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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Sep 07. 2022

당신들의 천국

 며칠 전 어느 수필가의 글을 읽다 보니 자신의 나이를 빗대어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표현을 한 것을 보고 나는 과연 몇 부 능선에 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은 없으나,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청년시절에 이청준 님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은 적이 있다. 내 뇌리 속에는 아직도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 이청준 님이 보낸 메시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나환자들의 집단 거주지인 소록도를 무대로 삼고 있다. 5·16 쿠데타가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군복 차림으로 소록도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해온 조백헌 대령,   그는 나름대로의 열정을 가지고 소록도를 나환자들의 천국으로 꾸미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부임 첫날부터 원생 탈출 사고가 일어나고, 조 원장은 외부사람의 눈에는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섬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후 조 원장은 불신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섬을 바꿔놓기 위해 군인 특유의 저돌성과 끈기를 가지고 많은 난관들과 부딪혀 나가기 시작한다. 조 원장의 간곡한 설득과 열정 어린 의지에도 원생들(소록도 병원의 환자들)은 원장을 불신하며, 모든 사업계획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 이유는 지배자의 관점에서 원생들의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역대의 원장들이 자신의 명예심과 과시욕 때문에 원생들을 배반했고 또한 그 권력에 빌붙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같은 원생끼리 서로를 배신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수십 년 동안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원생들이 겪은 배반의 대표적인 예가 일제강점기 때의 원장 주정수이다. 그는 행복한 낙원의 건설을 장담했고, 그의 의지에 감동한 원생들이 열심히 따라주어 소록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차츰 주원장과 원생들의 관계는 절대적인 지배자와 그에 복종해야 하는 피지배자의 관계로 변질되게 된다. 원생들은 낙원의 건설을 위해 계속되는 부역에 노예처럼 끌려 나가야 했고, 섬을 탈출해 나가는 사람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낙원에서 목숨을 걸고 빠져나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원장의 입장에서는 원생을 위하고 베풀어 주는 원생들의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지만, 원생의 입장에서 보면 원장의 동상욕을 위한 것이며 치자의 피치자에 대한 강요와 억압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소록도 안에 건설된 천국은 자신들의 업적을 쌓기 위한 원장들의 천국이지 환자들의 천국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백헌 원장은 자신의 동상욕을 철저히 부정하고 자신의 행위가 원생들을 위한 사랑의 행위라는 확신 아래 낙토 건설을 추진하지만 조백헌 원장의 '천국 만들기'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의 계획이 실패한 원인은 “울타리가 둘러쳐진 천국”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섬을 문둥이들을 위한, 문둥이들만의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조 원장의 생각, 섬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함께 하지 못한 조 원장의 선의는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가하는 또 다른 억압의 행사였던 것이다. 원장 개인의 일사불란한 통제와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소록도의 천국은 원장 한 사람을 위한 '당신들의' 천국일 수밖에 없었고 조백헌은 결국 치자와 피지배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숱한 우여곡절 끝에 섬을 떠난다. 

  

   조백헌이 섬을 떠난 지 7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조백헌은 원장의 신분이 아닌 한 민간인 신분으로 섬에 돌아온다. 원장이 아닌 섬의 주민이 되어 그들 속으로 들어가 주민들과 하나가 된 조백헌은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섬사람들의 '자생적인 운명에 근거한 힘으로 일구어낸 진정한 자유와 사랑이 행해지는 우리들의  천국의 모습이었다.


  민원실에 근무할 때 수용자의 가족들이 10분 남짓 되는 접견시간이 너무 짧다고 말할 때 나와 직원들은 가족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사무적인 말투로 직원이 부족하고 접견 가족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내가 가족들의 애절하고 아픈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모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친지를 접견하기 위해 차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 도착했고 접수에서부터 접견을 마칠 때까지 일반 수용자 가족과 똑같은 절차를 밟아 10분여의 접견을 마치고 외정문을 나섰을 때  수용자 가족들의 그 허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수용자 가족의 입장에서 직원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투명 유리로 단절된 작은 공간 속에서 제한된 시간에 한정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가족들의 애틋한 심정을 알게 되었고,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와 10분여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의 아쉬움,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듯한 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청준 님이 당신들의 천국에서 그들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들의 천국을 건설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명분과 업적을 남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지배자의 입장에서 나의 천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듯이 나 역시 민원인의 입장에서 불편을 겪은 후에야 수용자 가족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해 전부터 하나, 둘씩 늘려가며 키우기 시작한 화초들이 이제는 앞 베란다를 가득 메워 물 주는 시간만도 한 시간을 넘기고 있어 요즈음처럼 바쁜 나날이 지속될 때에는 다른 영양소를 전혀 공급해 주지 못하고 있다. 나만의 만족을 위해, 화초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의 마음을 갖곤 한다. 자기 PR 시대, 자화자찬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겸손의 미덕보다는 나 자신의 업적과 공적 쌓기에 열중하며 자기만족에 빠져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인생의 반환점을 지나 결승점을 향해 가는 남은 시간만큼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나만의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아내와 자식들, 회사 동료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 나의 존재가 천국이 아닌 지옥의 멍에를 짊어지게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교도관으로서 수용자들에게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쏟아붓고 있지만, 과연 내가 쏟는 열정과 정성이 수용자들에게,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 천국을 가져다주는데 기여하는 것인지, 지옥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지배자, 또는 피지배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또한 우리는 끊임없이 천국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도관이란 직업은 수용자들과의 관계에선 지배자가 되고 상급자와의 관계에선 피지배자가 된다.

  이청준 님은 피지배자가 놓인 처지와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지배자가 안겨주는 천국은 지배자가 자신의 성취욕과 자기만족을 위한 천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어느 한쪽만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동상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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