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1. 의미 있는 기억이 있어야 눈물을 흘린다 - 박문호
서로 다른 경험을 해왔고 지금도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동료들과 일을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왜 내 말을 저렇게 받아들였을까?"
"왜 내가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기억 못 하지?"
"왜 저 사람은 바뀌지 않는 걸까?"
황당하고 힘 빠지는 한 장면을 보자.
몇 달 전 회의 시간,
내가 침을 튀겨가며 제안했던 Action Plan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그들의 무관심 속에 묻혔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 날 상사나 동료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주말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이걸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라면 지금 우리가 가진 문제를 풀 수 있을것 같아!”
그가 내놓은 그 '획기적인 생각'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가 과거에 했던 말 그대로다.
억울하다.
내 말을 기억 못 하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시치미를 뗴고 내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건가?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잠시 제3자가 되어 이 미스터리한 현상의 '진짜 이유'를 찾아보자.
이것은 그들의 무능함이나 악의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아쉽지만 필연적인 메커니즘 때문이다.
(사실, 악의를 가진 사람도 더러 있다. 그래서 참 힘들다, 관계란.)
도대체 그 사람은 왜 그럴까?
그 사람의 뻔뻔함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인간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 - 인지 - 기억]
이라는 3단계 프로세스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사람은 이 세 단계의 경험이 온전히 쌓여야 비로소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
외부의 자극이 눈과 귀로 들어오는 단계다. 당신이 아무리 절박하게 외쳐도, 상대방에게는 그저 공기의 진동(소리)이거나 시각적 정보일 뿐이다. 정보라서 인지되는건 아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문득 ‘어 이런 가게가 있었나?’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감각은 단기정보로 끝날 수 있다.
들어온 감각을 자신의 과거 경험과 연결해 '해석'하는 단계다. 여기서부터 필터링이 시작된다. 상대방의 데이터베이스에 당신의 말을 해석할 코드가 없다면, 그 정보는 "나랑 상관없는 일"로 분류되어 폐기된다. 즉, 정보를 취득하는 개인의 경험과 필요에 따라 인지되든지 단기 정보로 흘러가든지가 결정된다.
인지된 정보가 강렬하거나 반복될 때 비로소 뇌의 해마에 저장된다. 그리고 인간은 "저장된 기억(데이터)이 시키는 대로만" 다시 세상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루프(Loop) 속에 살게 된다. 기억이 되어야 공감이 이뤄지고, 공감이 있어야 행동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때야 비로소 정보에 의미가 부여된다.
이 원리를 알면 앞서 말한 '아이디어 도용 사건'의 전말이 풀린다.
과거의 당신이 그 아이디어를 처음 말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1. 당시 동료의 뇌 속에는 그 정보의 중요성을 ‘인지’할 경험이나 데이터가 없었다.
2. 그래서 당신의 말은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감각단계에서 소음처럼 흩어졌다.
3.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동료도 비슷한 문제를 겪거나 외부 정보를 접하며 경험이 쌓인다. 그때 뇌 깊숙한 곳에 파편처럼 남아있던 당신의 정보가 비로소 현재의 고민과 결합해 "아! 좋은 생각이 났다!"라고 “인지”되는 것이다.
이때 뇌는 '정답을 찾았다'는 기쁨(내용)만 남기고, 그 정보의 출처가 '당신'이었다는 사실(출처)은 중요하지 않기에 지워버린다.
그는 도둑질을 한 게 아니다.
당신이 심어둔 씨앗이 그의 머릿속에서 발아하기까지, 물리적인 시차(Time Lag) 가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그에게 전달될 확률, 내가 의도한 그대로 그가 받아들일 확률은, 냉정하게 말해 0%에 가깝다.
이 0% 확률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상대를 움직이려면, 우리는 전략을 바꿔야 한다.
명료하게 (Clarity): 두루뭉술한 말 대신, 상대가 거부할 수 없는 명확한 문서나 시각 자료로 정리해서 보여주자. '감각' 단계에서 튕겨 나가지 않도록.
반복해서 (Repetition): "한 번 말했으니 알겠지"라는 오만함을 버려야한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뇌의 해마에 문신처럼 새겨질 때까지 반복해서 두드려야 한다. 인간은 기억에 있는 것만 하게 되는 존재니까.
좀 더 잘 인지되게 하는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을 반복하는 것.
이것은 서로 다른 우주에 사는 타인에게 내 뜻을 전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당연한 통행료다.
이 당연한 이치를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나도, 여전히 마음은 서툴기만 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상대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답답해하는 건, 결국 인내심 없는 '나'일 때가 많으니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경험'이라는 깊은 동굴 속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세상의 전부라 믿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저 서로 다른 동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사람 앞에서 깊은숨을 한 번 내쉬어 본다.
나의 진심이 그저 공기 중의 소음으로 흩어지지 않고, 당신의 감각을 건드리고, 견고한 인지의 벽을 넘어, 마침내 '기억'이라는 숲에 뿌리내릴 때까지, 나는 조금 더 명료하게 말하고, 끈질기게 반복하며, 묵묵히 기다려야 겠다고.
전쟁 같은 회사 생활 속에서 나를 지키고, 끝내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나지막이 최면을 건다.
"아직 너의 계절은 거기에 머물러 있구나.나는 조금 더 기다리며 너에게 닿을 기억을 준비할게."
그리고 언젠가 얄미운 동료가 내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신나서 말할 때, 분노 대신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속으로 씩 웃을 수 있어야지.
"드디어 입력 완료.너는 내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 데이터를 쌓는 중이었구나.나의 반복된 두드림이 마침내 너의 뇌를 뚫고 들어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 지독한 불통의 시간도 조금은 견딜만 한 '전달의 과정'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