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회사 타운홀은 갈수록 조용해지는 걸까?

소통(疏通)2.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by Agri MSG

과거처럼 한 명의 천재 리더가 "나를 따르라"고 외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대화'를 요구한다.

리더급 구성원뿐만 아니라,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팀원들과의 양방향 의사소통만이 비즈니스의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게 일반적인 성과향상의 방법론이다.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는-


오래 살아남은 대기업이나 역사가 오래된 보수적인 조직들조차 '수평적 문화'와 '평등'을 도입하려 애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누구보다 투명한 정보 공유와 격의 없는 토론을 내세우며 출발했던 스타트업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리더 > 팀원], 즉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일방적인 소통으로 고정되곤 하니까.


"자유롭게 의견을 내세요"라고 말하지만,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르고 리더 혼자 떠드는 상황. 참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왜 팀원들은 입을 닫는가?

리더는 회의 시간마다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웃으며 독려한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청을 피우는 무례한 리더도 없다. 그런데도 팀원들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는다. 왜일까?


팀원들의 뇌 속에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데이터가 쌓이는 과정은 조용히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 : 내 말이 닿지 않고 있음을 느낄 때 (인지의 부재)

팀원이 날것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리더는 즉시 자신의 경험과 논리로 분석을 시작한다.


팀원: "요즘 유저들은 이런 기능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리더: (진지하게) "그 근거 데이터는 있나요? 우리가 예전에 해봤는데 안 됐던 거랑 뭐가 다르죠?"

리더는 '경청'하고 '질문'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직관(감각)이 리더의 논리라는 벽에 부딪혀 즉결심판받는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팀원의 뇌는 이렇게 학습할 것이다.

'완벽한 논리와 데이터가 없으면 입을 열지 말자. 깨지니까.'

즉, 논리에 막히기 시작하면,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사전준비"의 과정에 팀원들은 지치기 시작한다.


더 최악은, 리더조차 미약한 근거로 -자신의 감과 경험으로- 반박을 할 때다.

리더 개인이 오랜 경험들로 굳건하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벽을 팀원이 느끼기 시작하면 좌절감을 느낀다. 공감을 받으려면 리더도 동일한 경험을 쌓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할까? 그 경험을 쌓는 시간은 누가 감당하게 되나?)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똑똑하고 경험 많은 리더가 있는 조직일수록 날것의 아이디어가 숨 쉴 공간은 사라지고, 침묵이라는 '안전한 선택'만 남게 된다.


두 번째 단계 : 내 말로 변화되지 않겠다라고 느낄 때

앞선 이유로 험난한 검증을 뚫고 의견을 냈다.

리더도 "좋은 의견이네요"라고 끄덕였다.

"인지"까지는 성공한 듯 보였다.

참고 : 감각-인지-기억(공감)의, 마음이 움직이는 단계 https://brunch.co.kr/@ca9101c99515473/16


하지만 그게 끝.


치열한 토론 끝에 결론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리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자신의 원래 생각대로 지시를 내린다.

"고민해 봤는데, 역시 원래 방향대로 가는 게 리스크가 적겠어요."


이 과정이 반복되면 팀원의 뇌에는 치명적인 부정적 기억이 각인된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답정너)."

더 나쁘게는, 납득될 수 있는 설명조차 없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부정적인 기억이 1이 쌓이면, '내 의견이 회사의 방향을 틀었다'는 효능감 적어도 셋은 쌓여야 팀원은 다시 입을 연다. 그것이 사람이다.



리더의 딜레마

물론 리더들도 억울할 수 있다. 조직 내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는(가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답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고민하고 수많은 조력자들에 조언을 구하는 활동들도 한다.


리더 역시 인간이기에 그렇게 자신의 동굴을 만들어 낸다.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리더.png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리더


닿지 않거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건..

듣지 않거나, 팀원의 의견이 틀려서가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만들어 낸 틀에 벗어난 이야기는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라면, 본능이 계속 말을 걸더라도 계속 상기해야 한다.

내 경험과 직관이 모든 것일까?, 내가 갖고 있는 -얻어낸- 데이터는 과연 맞는 건가?



침묵을 깨는 건, [존중]과 [변화]라는 두 개의 효능감

리더들은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이 계속해서 반려되는 경험을 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손을 드는 팀원은 없다.

불통과 거절의 반복을 견디며 계속 말해주길 바라는 건, 리더의 오만이자 착각이다. 팀원의 인내는 절대 당연하지 않다.


팀원의 굳게 닫힌 입을 열려면, 리더는 두 가지 차원의 '효능감'을 증명해야 한다.


첫째, 거절할 때조차 느껴지는 '존중의 효능감'.

팀원은 의견 한 마디를 내기 위해 고민하고,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비용'을 지불한다.

리더는 이 비용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 채택하지 못한다면 '왜 지금은 안 되는지', '당신의 고민이 어떤 지점에서 유의미했는지'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비록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나의 고민이 리더에게 무겁게 다루어졌다는 감각. 그것이 존중의 효능감이다.


둘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의 효능감'.

존중받는 느낌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팀원을 춤추게 하는 건

"내 말이 실제로 리더와 회사를 바꿨다"는 짜릿한 승리의 기억이다.

거창한 전략이 아니어도 좋다. 회의 방식이든, 작은 복지 제도든, 혹은 리더의 말버릇 하나라도 팀원의 의견에 의해 '수정'되는 모습을 보여주자.

"네 말이 맞아서, 내가 생각을 바꿨어."


리더가 자신의 기억과 고집을 꺾고 팀원의 의견을 수용하는 그 순간. 그 강력한 '변화의 증거'를 목격할 때, 팀원은 비로소 "이곳에서는 말해도 된다"는 확신을 얻고 진짜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리더와팀원.png 진심의 소통



이 브런치북의 타이틀은 “나에게 -또는 너에게- 거는 최면”이다.

여러 어려움에 부딪혀 갈등하고 고민하는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글도,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자 질문이자 최면인 게 맞다.


나는 갇혀 있는 리더가 아닌가?

: 나의 경험이, 내가 아는 지식이 전부라고 믿으며 '나만의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팀원의 새로운 제안을 '편협함’이라고 치부하며, 내 동굴의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는가?


과연 나는 변하는 걸 수용하는 리더인가?

: 말로는 "좋은 의견이면 따른다"라고 했지만, 내 자존심이나 고집 때문에 팀원의 정답을 외면한 적은 없는가? 팀원의 말 한마디에 나의 전략을 수정할 만큼, 나는 정말 유연한 사람인가?


나는 팀원에게 오픈마인드인가?

: 팀원들이 입을 닫은 것을 그들의 '성격' 탓으로 돌리지 않았는가? 그들이 마음을 닫은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내 말만 정답"이라며 귀를 닫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진정한 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기억하자.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너의 말이 나를 바꿀 수 있음을 허락(?)하는 태도.



2025년, 인지하면서도 기억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나에게

2026년은, 제발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길 바라며, 외워본다.


"나는 완성된 리더가 아니다. 나는 언제든 너에 의해 깨지고, 수정되고, 다시 지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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