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에 대한 짝사랑을 멈추기
처음 리더의 위치가 되었을 때, 팀원들에게 요청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대화를 많이 하자
둘째,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는 관계가 되자
사람에 대해 (어쩌면 그보다도 상황에 대해) 신속하게 알고 싶었던 마음이자,
리더로서 팀원 개개인의 동기부여를 위한 앎의 과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동기가 깎여나가는 건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이 먼저 신호를 보내니까.
팀원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솔직해지고, 리더인 내가 그 신호를 빨리 알아채서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우리는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괜찮습니다,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하던 팀원이, 다른 팀원들과 술자리에서는, 혹은 다른 팀 리더 앞에서는 "요즘 이게 걱정된다” 며 나도 몰랐던 업무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럴수 있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소외감 허탈감은 어쩔수가 없다.
"내가 문제 해결을 못 해줘서 입을 닫은 걸까?"
"감정까지 공유하자던 내 진심은,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애초에 내가 바랐던 관계는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 같은 것이리라.
적당히 오픈하고, 가끔은 뒷담화도 하는 직장생활을 배경으로 수많은 드라마들이 쓰여지고 있지 않은가?
나도 누군가의 팀원으로서 그랬었잖아.
리더가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동료가 아니라, 설득시키고 이해시켜야 하는 대상이 되거나 평가자로서만 인식이 될수록 거리감은 더 커진다.
그런데, 그 간극이 제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있기나 할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자. 라고 마음을 다잡고 내가 얻은 해결책
동기는 리더가 주사기처럼 꽂아 넣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구의 말처럼, 리더는 그저 우물가에 데려오거나 우물을 파두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물을 마실지, 혹은 발만 담글지, 아니면 그냥 지나칠지 결정하는 건 오롯이 팀원 스스로의 마음속 버튼에 달려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동기'라는 연료를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시동을 걸었을 때 막힘없이 달릴 수 있도록 도로를 정비하는 일이었다. 장애물을 치워주고, 그늘막을 쳐주고, 필요한 자원을 제때 공급해 주는 것.
"괜찮습니다"라는 말은 사실 가장 괜찮지 않을 때 나오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팀원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신호가 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주파수가 달라졌을 뿐이다.
말로 하는 '공유'를 부담스러워 한다면, 또는 익숙하지 않다면, 리더인 내가 눈으로 하는 '관찰'의 해상도를 높이면 된다.
관심만 있다면, 관찰은 쉽다. 평소보다 느려진 메신저 답장 속도, 회의 시간의 잦은 침묵, 미묘하게 어두워진 표정, 담배와 함께 뱉어내는 짧은 한숨. 이 사소한 비언어적 신호들이야말로 "요즘 이게 걱정된다"는 말보다 더 정직한 데이터다.
억지로 마음을 열라며 문을 두드리는 대신, 그저 창문 밖에서 날씨를 살피듯 그들의 컨디션을 살피기로 했다. "요즘 힘든 거 없어요?"라고 묻는 대신, "지난주보다 업무량이 좀 몰린 것 같네요, 일정 조율 좀 해볼까요?" 라고 건네는 것.
감정을 털어놓지 않아도 좋다. 내가 조금 더 예민하게 살피고, 그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먼저 감지해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뢰라는 다리는 놓아지고 있는 것일 테니까.
이제 나는 팀원들에게 짝사랑을 갈구하는 연인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단단한 운동장이 되어주려 한다. 가끔은 다른 곳에서 내 흉을 보더라도 괜찮다. 그들이 털어놓는 불만들이 해소될 수 있게 뒤에서 조용히 우물을 파고, 돌부리를 치우는 일. 그것이 관계가 만들어 버리는 어쩔 수 없는 벽을 인정한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비록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다 나누진 못하더라도, 당신이 일하는 동안 내가 당신의 뒤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리더십의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