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힘든 거 다 티나요

나의 솔직함이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by Agri MSG

해를 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저녁, 팀원으로부터 DM을 받았다.

오늘 좀 일이 고됐는데, 누워서 문득 XX님(나를 지칭한다) 에너지 레벨이 많이 떨어져 보이셨던 게 생각나네요. 우리 팀 근심 10%는 제가 덜어 놓을게요!
화이팅입니다~!

미안했고, 감동했고, 든든했고, 자책했고...


그때의 내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엔 내 어휘가 부족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내 계획과 전략에 확신이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리 팀에 자신감이 생긴 요즘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뜻하지 않은 헤어짐들, 내 전략과는 다른 의사결정, 개개인보다 더 큰 제도와 자본의 영향력 등,

여러 요소들 때문에 '이럴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감정의 침체가 깊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 침체가 팀원들한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걸 과연 나는 몰랐을까?


아니, 몰랐을 리 없다.

다만, 그 전파의 속도와 농도를 과소평가했을 뿐이다.


감정의 물리학에서 긍정과 부정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긍정의 기운을 퍼트리는 일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면, 부정의 기운은 맑은 물에 떨어진 검은 잉크 한 방울과 같다.

아무런 노력 없이도,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투명한 물 전체를 탁하게 물들인다.


리더는 가장 농도가 짙은 잉크 한 방울이다.

나의 사소한 한숨은 팀원들에게 태풍 예보가 되고, 회의 시간의 짧은 침묵은 그들에게 거대한 불안의 시나리오가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이 1이라면, 그것이 팀원들에게 닿을 때는 10의 충격으로 증폭된다는 사실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한때 나는 '솔직함'을 팀을 운영하는데 있어 최우선 덕목이라 믿었다.

(참고 : https://brunch.co.kr/@ca9101c99515473/18)

팀원들이 나에게까지 그들의 상태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힘듦을 나누게 하려면, 나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새삼 다시 깨닫는다.

이상향은 현실과는 다르고, 사람과 상황에 따라 내 이상향은 변화되어야 한다.


팀원들은 리더의 등을 보고 걷는다.

그 등 뒤에서 리더가 휘청거릴 때, 팔로워들이 느끼는 것은 연민이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그렇기에 리더의 감정은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자원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의 우울을 있는 그대로 전시하는 순간, 그것은 팀원들이 짊어져야 할 부당한 짐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하얀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속이 타들어 가도 겉으로는 차분한 미소를 짓는 거짓말.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단단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는 거짓말.


그것은 팀원들을 기만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의 불안이 그들의 열정을 갉아먹지 않도록 막아세우는, 일종의 방파제가 되기 위함이다.


팀원이 보내준 "근심 10%를 덜어가겠다"는 따뜻한 문자에 답장을 보내며 다짐한다.

나는 나머지 90%의 근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내일은 조금 더 연기를 해볼 참이다.

솔직한 감정이 표정에 그리고 어투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미숙한 인간인 내가,

과연 이 연기를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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