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특별함을 지나치는 나에게
긴 연휴를 핑계삼아, 잊었던 두 가지를 보기 시작했다.
하나는 삼국지,
두 번째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삼국지는 정리할 것들이 많으니 뒤로 두고, 응팔에 대한 생각정리를 하나 해보자.
응팔. 이놈의 반골기질 때문에, 다들 좋다고 할 때는 오히려 외면하다가 보고싶다라는 마음까지 깜빡 했었다. 그러다 얼마전, 응팔 10주년 특집 여행 기사를 접하고 보고싶었던 생각까지 끌어오게됐다.
아이러니 하게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덕분에, 어릴 때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받아들여졌다.
극 중 ‘택이’는 세계적으로 천재라 추앙 받는 바둑기사다. 하지만 골목 안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젓가락질이 서툴고 신발 끈도 잘 못 묶는, 그저 챙겨줘야 하는 조금 모자란 동생 같은 존재일 뿐이다. (맛있는 거 사주는 동생같은 친구ㅋ)
아직 1/4분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감히 나의 올해의 책으로 꼽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불변의 법칙>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성경 구절 하나를 소개한다.
“선지자는 자신의 고향에서는 인정받기 힘들다.” - 마태복음 13:53~58 을 정리한 문장
인간은 참 묘하다.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가 가진 소중함과 특별함보다 그 이면의 평범함과 모자람을 더 많이 본다. 택이를 대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며 느꼈던 숱한 답답함의 순간들이-그리고 책에서 확인해 준 불변의 법칙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그런 편향 -친숙해질수록 오히려 스스로 시야를 좁게 만드는- 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을, 나는 평생에 걸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내가 그런사람이 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지도 고민하면서.
1. "우리가 공유한 '과거의 기억'이 그의 '현재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 우리는 누군가의 미숙했던 시절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이뤄낸 지금의 성취를 과소평가하곤 한다. 과거에 알던 그와 지금의 그는 같은 사람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2. "그가 만약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전문가라면, 나는 그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사람일 수록 새롭게 보고자 하는 질문을 시도 해야한다.
3. "나는 그의 '결핍(젓가락질)'을 보느라 그의 '경지(바둑)'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기 위한 질문. 단점은 쉽게 발견하는게 인간이다. 쉽게 눈에 띄는 사소한 결핍이 그가 가진 탁월함을 가리게 두어서는 안된다.
의도적인 '낯설게 보기'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를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으로 보지 말고, 매일 새롭게 갱신되는 데이터로 대하자.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는 다르다. 익숙한 관계라는 숲에서 빠져나와 그가 낸 성과물을 객관적인 지표로만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는 노력을 해야한다.
공적인 가치와 사적인 친밀함의 분리
택이가 젓가락질을 못 하는 것은 '친구 택이'의 영역이고, 바둑판 위에서 사유하는 것은 '전문가 택이'의 영역이다. 친밀함이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갉아먹지 않도록 마음속에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개인적인 친분과 사회적인 능력은 전혀 다른 분야다.
무엇보다도...
지식의 오만을 경계하기
"내가 그를 잘 안다"는 생각은 가장 위험한 편향이다. 타인에 대해 다 안다고 자부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박제해 버리게 된다. 타인은 언제나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다는 듯이 평가하고 논평하는 사람은 반대로 자신의 오만과 편협함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선지자를 인정하는 것은 선지자의 절대적인 몫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몫이다.
익숙함에 가려진 특별함을 먼저 발견해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부디, 2026년 설 연휴에 정리한 행동양식들이 내 습관이 되어서, 주위사람들의 평범함에 내 눈이 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