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얼마 전, 내가 직접 면접을 보고 인턴으로 채용했던 팀원과 마주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 정직원으로 전환될때만 해도 우리 팀이였던 그 친구는, 성과와 미래발전가능성을 인정받아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겨 묵묵히 일한 지 수년이 지났다.
- 핑계를 대자면, 그렇게 내 품을 떠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주 앉은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무겁게, 그리고 아프게 짓눌렀다.
- 자신의 의견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환경에서 오는 무력감.
- 회사의 필요에 따라 이 보직 저 보직을 오가며 빈자리를 메우다 보니, 이력서에 내세울 만한 뾰족한 무기 하나 없는 '제너럴리스트'로 굳어지고 있다는 커리어에 대한 짙은 불안감.
- 그리고 그 모든 헌신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인정의 부재'.
그 친구의 이 한숨들이, 우리 조직 전체를 지탱하는, 아니 리더로서 내가 반드시 지켜주었어야 할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로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거대한 사회가 유지되는 두 가지 원동력으로
'신화(믿음)'와 '질서(규율)'를 꼽았다.
보이지 않는 허구를 함께 믿는 심리적 결속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리적인 통제망.
이 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인간은 수많은 타인과 협력하며 거대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리더 자리에 있으면서, 나는 이 철학적 통찰이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조직의 현실을 정확히 관통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초기 조직을 폭발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결코 촘촘한 '질서와 규율'이 아니다. 이 시기의 우리를 밤낮없이 달리게 만드는 진짜 원동력은 '믿음을 통한 심리적 결속'이다.
나는 구성원들이 몰입하고 함께 협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믿음을 다음 세 가지로 정의한다.
지금은 흔들리더라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고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이 믿음이 없으면 구성원들은 매 순간 불안해하며 의심하게 된다.
내 일이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소모적인 톱니바퀴가 아니라, 성장에 직결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확신이다. 그 친구가 털어놓은 '의견이 개진되지 않는 답답함'과 '인정의 부족'은 바로 이 두 번째 믿음이 우리 조직 곳곳에서 바스러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수동적인 태도로 돌변한다.
그것이 금전적이든, 스톡옵션이든, 혹은 '개인의 압도적인 커리어 성장'이든, 회사가 잘 된 만큼 나의 삶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잦은 보직 변경으로 뾰족한 경력을 쌓지 못했다는 불안감은 결국 성장에 대한 세 번째 믿음의 상실이었다. '나의 성장'이라는 보상이 불투명해질 때, 헌신은 억울함으로 변하고 결국 이탈로 이어진다.
이 세 가지 믿음 중 적어도 한 가지는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몰입하고 함께 땀을 흘린다. 이 믿음을 조직 구석구석에 심어주고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가장 첫 번째 역할이다.
조직에 이탈이 잦아지고 불만 섞인 뒷말이 나오는 시기가 있다.
이때 많은 리더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흔히 하는 실수가 '질서와 규율'을 강화하는 것이다.
목표를 조정하고 타이트하게 관리하며, 보고 체계를 조이고, 마이크로매니징을 시작한다.
하지만 믿음이 깨진 자리에 들이대는 규율은 그저 차가운 족쇄일 뿐이다.
떠나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이탈을 가속화시킨다.
조직이 흔들릴 때 회사의 대표로서, 책임의 의무가 있는 리더로서 가장 먼저 뼈아프게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저 세 가지 믿음 중, 지금 우리가 주지 못하고 있는 믿음은 무엇인가?"
나를 믿고 합류했던 그 친구가, 그리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우리 모든 팀원들이 다시 예전의 반짝이는 눈빛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부터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그리고 우리 조직은, 지금 어떤 믿음을 나누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