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4일 수요일 오후, ‘2025년도 ㅇㅇ공모사업 발전 방안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날 회의에서 팀장님께서는 ‘최초 공모가 시작되었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므로 ‘그 당시 예산규모 그대로 가지고 가기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여년 전 공모 시작 당시 제안사업은 1,100건이 넘게 접수되었고, 그에 맞춰 심사 한도액도 상당했습니다. 현재는 300건 정도로 줄었고 그 조차도 수혜자가 한 지역에만 국한된 제안이 90%이상으로, 우리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각 지역별로 공모를 별도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공모사업 실시 전인 올해 3월, 운영위원회 개최 시 이런 사정을 이야기 하고 새로운 계획안을 제시했습니다. 적합한 공모 제안이 있으면 그 때 예산편성이 되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운영위원회에서는 즉각 반대표를 던졌고, 위원장께서도 위원들의 임기가 2년이고, 올해가 그 2년째이니 올해 만이라도 기존 방식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고 말씀하셨지요.
12월 4일 회의중 팀장님이 그런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위원회에서 요구한 00억원의 30%수준으로 예산안이 편성되었다는 이유로 회의는 2시간 내내 비난과 질책의 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부위원장은 중재하고자 마이크를 잡은 퍼실리테이터 사회자에게 ‘마이크 그만 잡으라고, 당신 시끄럽다‘고 외쳤습니다. 당장 사장님께 쫓아가 항의해야 한다는 부위원장측과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거라 반대하는 위원장간에 큰소리가 나기까지 했지요 70여명의 사람들은 긴장과 위압감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곧바로 저는 오늘 회의가 평화롭게 끝나길 바랐던 마음이 얼마나 헛된 기대였는지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작년 말 이 회의를 한번 겪으신 팀장님께 예전부터 연말 회의의 분위기를 전해 들었기에 이 행사를 잘 치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에게는 있었습니다.
‘내년도 사업 개선방안 토의’라는 주제의 회의이므로 굳이 원탁테이블까지 렌탈해가며 준비 했는데.
1년 동안 고생하셨으니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차와 간식을 즐기시라고 케이터링도 불렀는데.
60여명의 자유로운 원탁회의를 기대하며 외부에서 퍼실리테이터 강사님도 7분이나 초빙했는데.
그리고 12월 올해 마지막 회의인 이 날을 위해 지난 1월부터 마음 졸여왔던가를.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강한 회의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난 1년간 달려왔던 것인지?
무엇을 위해 아파도 타이레놀과 종합감기약과 지사제를 먹으며 일을 했던 것인지?
무엇을 위해 나는 평일에도 야근을 밥먹듯 하고, 올해 6-7월부터 주말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나와서 일해야 했던 것인지?
무엇을 위해 아들이 수업도 못들을 정도로 아파서 일주일내내 학교 양호실로 가야했는데도, 출근해야했던 것인지? 등등
모든 것들이 허망했고, 애써도 변하는 것은 없으니 변화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저는 세게 휘청거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는 한없는 미움의 벽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인 7일과 8일, 한강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요일 그날의 회의가 화요일 저녁의 비상계엄령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의와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함부로 짓밟고, 그렇게 짓밟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그것.
그래서 저는 ‘소년이 온다’에 제가 미워하고 싶은 사람(자기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은 어찌되어도 좋다는 행태를 보이는)을 충분히 미워해도 된다는 마음에 업혔습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거야, 원래 그래’ 라며 체념속에 업혔습니다. ‘어쩔 수 없어, 바뀌지 않아’라며 체념에 한껏 동조하며 수요일 저와 팀장님을 함부로 대했던 그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마음껏 미워했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욕하는 것은 나 자신을 먼저 욕되게 하는 것이고 내 뇌가 먼저 듣는다며 고고한 척했는데 그것이 전혀 괜찮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괜찮은 척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다음날 오후늦게 위원장님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은 팀장님과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서는 염치라는 게 있는 것인가. 이렇게 막 개인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려면 팀장님한테나 할 것이지 권한도 없는 나한테 왜 전화를 하는 것인가....
저는 까칠했고 메말랐으며 변화의 힘이 없었습니다.
저와 팀장님을 무례할 정도로 몰아붙인 사람들에게 더 이상 친절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의와 상관없이 다음년도 위원 신청 문의를 위해 회사로 전화로 거시는 (목소리로 생전 처음 만나는) 분들의 전화를 받는 것조차도 싫어졌습니다. 병가 내고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가지 못하고 일하는 내 모습도 싫었습니다. 점심도 먹지 않고,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팀원들도 놀랐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렇게 지난 1년을 보상 받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