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밖에 서 있을 용기

by 거북이

요즘 야근이 잦아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했습니다.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하지 않고 회사 근처 까페에서 간단한 커피와 쿠키를 먹으며 책을 읽고자 했습니다. 엊그제까지만해도 쌀쌀했는데... 점퍼를 벗어 오른팔에 걸쳤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에 '계절이 또 바뀌는구나' 라며 시간의 덧없음을 느끼던 찰나, 누군가 저를 부릅니다. 작년에 같이 일했던 젊은 여직원이었습니다. 특별한 일 없으면 같이 걷자고 먼저 제안합니다. 그 제안이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흔쾌히 동행을 선택했습니다.


직원은 미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남자'와 '결혼'에 대한 화제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대화에 곧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대화 패턴에 한국 남자에 대한 비판, 사회정책에 대한 비판이 연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직원은 결혼이 싫고 앞으로도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확언을 합니다. 왜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우리나라 남자들의 성매매 통계가 엄청나다며 그 성매매를 하는 남자들이 끔찍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대한민국에서는 정상적인 남자가 살 수가 없는 남자라고 주장합니다. '대한민국 남자 양성소'인 군대에서 그 천연의 고운 마음이 다 사라지고 만다고. 사라지지 않으면 구타와 왕따와 자살로 죽게 된다고 합니다.


또, 현재 인구감소 대책으로 시행되는 기혼들만을 위한 출생정책도 비판합니다. 본인은 앞으로도 절대 결혼할 생각이 없어 암담한 심정이며, 출생정책이 강화된 다른 국가들에서는 미혼 여성의 자살율이 높다고 통계에 그 근거를 둡니다.


맙소사! 저는 그런 대한민국 남자인 남편과 아들녀석을 집에서 매일 마주치고 있는데 잠시 어지러움과 혼돈이 다가 왔습니다. 여직원의 말에 의하면 저는 성매매를 하는? (혹은 했을?) 남편과 군대에서 곧 죽게 될 아들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직원에게 '이 세상에 좋은 남자도 있어' 라며 사례를 들었더니 '아~ 그러니까 제가 이 대화 하기 싫었던 거에요' 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현재 이 직원의 세계에서는 그게 진짜인 세계이므로 제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말들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 직원과는 '남자'와 '결혼'에 관한 대화는 되도록이면 금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물론 이 직원편에서 먼저 저를 피하고 만나줄 가능성도 희박하겠지만요.


회사 게시판에도 마찬가지로 당직근무를 서는 방법등에 관한 논쟁 등에서 남과 여가 갈려 종종 서로를 비난합니다. '니가 여자 이기때문에' '니가 남자 이기때문에' 라며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로 싸우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이몽룡과 성춘향이 되어 서로를 흠모하고 갈망해도 모자를 판에.


누가 이 피끊는 청춘들의 마음에 흠모와 갈망대신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두었는가 이 각박해진 사회를 되돌아보게도 됩니다.


겉의 형태는 명백한 분노와 과격한 비판과 공격, 원망의 형태이기는 했지만,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억울함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82년생 김지영>이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김지영을 알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그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지영은 성별을 뛰어넘어, 하청업체의 김군들이며 한 때 몇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해야 했던 우리 남편 등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를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와 만난다는 정현종 님의 시 <방문객>도 생각납니다. 상처와 뜻밖에 만나고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과의 만남이 꺼려지고 반작용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탓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옆으로 옆으로 전염이 됩니다. 코로나 19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강한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무실에서도 그렇습니다. 제일 위에 사장님이 화를 내면 그 아래 화가 아래로 아래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전달됩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전달된 화와 분노, 두려움은 소위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증폭되는 듯합니다. '위험해 어서 도망가, 너는 그 위험을 맞설 수 없어' 태초부터 인간의 몸에 새겨진 보호본능 DNA가 빨라진 심장 박동소리와 함께 말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스며든 두려움을 봅니다. 과연 그것들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두려움인지?


한편,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냈을 때 고마움이 생각납니다. 처음 "남편에 대해 100가지 감사를 글로 써보세요" 라고 *한만정 감사일기 마스터님께 권유를 받았을 때 '이건 미친짓이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해보세요. 분명 변화가 있을 거에요."라고 말씀해주셨지요.


(* 약 3여년전쯤 독서모임을 통해 우연히 사단법인 인생디자인학교를 만나게 되었고, 당시 교장선생님이셨던 한만정 이사장님이 5월중 100감사 쓰기 캠페인 행사를 하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믿고 쓰기로 했습니다. 본인의 삶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저는 신뢰합니다)


30개까지 겨우 쓰고 멈춰 있을 때, "쓰고 있어요?" 라고 전화를 해주셨지요. 또 60개까지 쓰고 멈춰 있을 때도 "제 꺼 한번 참고해 보세요" 라고 전화로 격려해주셨지요.


마침내 100가지 감사 쓰기를 완성했을 때 이는 '기적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입니다. 너무 기뻐 새벽부터 '100감사 쓰기 카톡방'에 '우와, 우와' 기뻐하면서 다썼다고 자랑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제가 옆에서 계속 지지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을 계속 들으며, 힘이 되는 말들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가 찌르는 아픔의 말들 속에 저의 아픔도 동시에 자극되고 반응이 되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곁에서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신께 기도합니다. 저에게도 통계밖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라고. 그래서 이렇게 분노하고 화내며 두려워하고 떠는 이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고, 곁에서 담담히 함께 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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