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 결국 행동할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돼
네 환자가 회개를 하는 바람에 놓쳐버렸다고? 또, 구름이 네 환자를 애워싸 접근할 수 없었다고? 그것이 원수가 미개한 인간 버러지들에게 나타날 때 쓰는 현상인 줄 몰랐단 말이냐? 그걸 지금 일급에 해당하는 대참패의 이유였다고 말하고 있는 꼴이라니, 너의 어리석음을 어찌 할꼬.
이제 네가 어디에서 실수를 한 것인지 한번 분석해보자.
네가 맡은 인간 환자 ‘레오’, 그 아이가 책장에 꽂힌 낡은 인문학 서적에 손을 댔다고? 그리고 혼자 숲길을 걸었다고? 레오는 잘난척하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진짜 좋아서 읽었지. 그리고 혼자 산책한 것도 진심으로 좋아했지.
너는 어리석게도 인간이 허영심, 사치, 세상에서의 성공과 같은 ‘가짜 쾌락’ 대신 ‘진정한 쾌락’을 허락한거지. 지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가 가장 혐오하는 원수의 선물을 말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나 몰입의 경지, 겸손 같은 미덕을 일깨우고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지. 고통과 쾌락은 너무나 명백한 현실이기에, 환자가 좋아하는 책이나 산책을 막았어야 했는데 무식한 너는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원, 수치스러운 줄 알거라!
중요하니 다시 한번 강조하마. 인간 환자가 자신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게 속여야해. 인간환자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며, 혼자만의 편견으로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도 말짱 꽝이야. 원수는 인간 환자가 아집을 버리고 나면, 진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하지. 그러니 세상의 기준과 관습과 유행에 따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중요한 책목록’이나 기웃거리며, 제 취향은 끝내 모른채 여기저기 표류하는 인간은 어느새 지옥문 앞에까지 떠밀려 올테지.
이제 다시는 환자를 놓치지 않도록 이제 연습을 해보자.
니가 공략해야 할 환자 A가 있다고 해보자. A는 이제 막 책을 펼치려 하고 있다. 책 속의 문장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불꽃을 일으키기 전에 너는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조급하게 책을 뺏으려 들지는 마라. 오히려 그가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라. 단,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은 우리에게 전혀 해로울 것이 없지.
가장 좋은 방법은 A에게 '분석'이라는 도구를 쥐여주는 것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두지 말고, 그 문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많은 주석과 설명자료들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해라. 네가 그의 귀 옆에서 끊임없이 속살거리는 거다. “이걸 읽는다고 네 삶이 당장 변할까?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더 많은 책을 읽어야해. 지식이 쌓이고 난 후 행동은 나중에 해도 충분해”
원수는 인간이 산책을 하며 이름 없는 꽃을 보거나 맑은 공기를 마실 때 그들의 순수한 영혼을 회복시킨다. A가 신발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면, 너는 즉시 그의 머릿속에 '미래의 계획'을 주입해라. 산책의 즐거움 대신, 내일 직장에서 할 일이나 대학 입시 걱정을 떠올리게 하란 말이다.
기억해라, 조카야.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현재’란다. 현재에 집중하는 인간은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버러지 같은 인간 환자들이 숲길을 걸을 때, 발에 닿는 흙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게 해라. 순수한 기쁨 대신 ‘나는 왜 산책을 하는가?’ 혹은 ‘산책이 내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 같은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풀리지 않는 고민들로 고뇌하게 만들어라.
자 이제 A가 숲길을 걷기 시작한다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아주 위험한 순간이지. 니가 실패한 장면이 떠올라 다시 한번 분노가 끌어오르지만, 나는 너를 매우 아끼니까 딱 한번만 더 알려주마. 이때 너는 그에게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주어야 한다. 자연의 소리 대신 인공적인 알림음에 신경 쓰게 해라. 만약 그가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면, 그가 방금 읽은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나는 정말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자만하게 만들어라.
자, 웜우드. 이제 오늘 교훈의 하이라이트를 알려주마. A가 무언가 선한 결심을 한다면 그냥 내버려 둬라. 대신 “내일부터 해야지” 라는 마음을 불어넣어줘. 그는 매일매일 “내일부터는 매일 책을 읽고 산책하며 영혼을 가꾸겠어!” 라고 다짐만 하고 있을 거다. 그런 다짐은 우리에게 아주 유익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실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지.
A는 침대에 누워 '내일의 멋진 나'를 상상하며 뿌듯해할 것이다. 그 상상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상상 속에서 그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고 부자가 되겠지. 하지만 정작 내일 아침이 밝으면, 너는 그에게 아주 작은 피로감과 “내일부터 해야지”라는 안일함을 선물하면 된다.
실천하지 않는 생각이야말로 영혼의 감옥이나 다름없지. A를 그 감옥 속에 가두어라. 그가 고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5시간 동안 토론하게 하되, 단 한 페이지도 가슴으로 읽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건강에 대해 입에 침을 튀기면서 말하게 하되, 단 10분도 실제로 걷게 해서는 안 된다. 행동이 없는 다짐과 의지는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만들지.
자, 이제 새로운 환자를 물색해보자꾸나. 행동은 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만 펼치는 군침도는 환자를 말이다. 그리고 제발 공부 좀 하거라! 이 위대한 삼촌이 가르쳐준 내용들을 복습도 좀 하고.
너를 아끼는 삼촌, 스크루테이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