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습한 지하의 집무실,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각거리는 깃펜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웁니다.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네가 맡은 인간 '테오'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는 아직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더구나. 아주 좋은 시작이다. 그를 '원수'의 빛으로부터 떼어놓는 법은 거창한 유혹이 아니란다”
일요일 아침, 테오는 습관처럼 교회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습니다. 웜우드는 테오 뒤에 숨어 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테오가 교회에 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 마라. 대신, 그가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게 만드는 거다. 진정한 마음 없이 겉모습만 멀쩡해보이도록 유지하는 습관은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단다”
테오의 일상은 작고 사소한 선택들로 채워집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하기로 결심해 놓고 ‘5분만 더!’를 외치며 잠을 계속 청하거나, 해야 할 일 대신 짧은 영상들을 무료하게 넘겨봅니다. “웜우드야, 인간들은 자신들이 큰 죄를 지어야만 빛과 선함에서 멀어진다고 착각하지.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나중에 하면 돼', '이 정도는 괜찮아' 같은 사소하고 취소 가능해 보이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그를 빛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법이란다. 마음속 죄의식의 싹이나 불편함들을 무시하게 해.”
가끔 테오의 마음속에 '이래도 될까?' 하는 양심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그때마다 웜우드는 그의 귓가에 속삭입니다. '나중에 교회에 가서 회개하면 돼. 지금은 그냥 즐겨.' 스크루테이프는 조언합니다. “막연한 마음속 불편함을 이용해라. 그가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대신 자극적인 뉴스나 달콤한 음악과 일상들로 그 틈을 메워버리고 바빠서 잊어 버리게 만들어라. 텅빈 통장을 보면 머리가 아파오고 급기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또다시 흥청망청 쓰게 되는 것처럼 인간은 불편함을 잘 견디지 못하지”
테오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냅니다. 쇼츠를 보며 종일 시간을 보내거나, 목적 없는 대화를 나누며 오후를 보냅니다. “가장 무서운 건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의 힘이다. 그가 큰 악을 행하지 않아도 좋다.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도록 해, 어리석은 인간은 지옥문 앞에서 다다랐을 때야 정신 차리고 ‘아뿔사, 그동안 난 뭘 할거지? 거창한 일만 하려다가 혹은 내일해야지, 내일 해야지..만 반복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렸구나’ 라고 후회할 것이다.
잠들기 전, 테오는 형식적인 기도를 읊조립니다. “하나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내일 살 물건이나 친구와의 농담에 가 있습니다. 웜우드는 만족스럽게 웃습니다. “기도를 비현실적으로 만들어라. 진심 어린 대화가 아니라, 마치 마법 주문을 외우듯 무미건조하게 만들면 그 기도는 결코 빛에 닿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테오는 친구 브람이 슬퍼하는 모습을 봅니다.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테오는 이내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지나칩니다. '귀찮게 상관하지 말자. 나라고 항상 행복한 건 아니잖아?' 스크루테이프가 칭찬합니다. “잘했다! 양심의 가책을 피하는 쉬운 방법은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지”
이제 테오가 걷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 되었습니다. 가파르지 않아서 자신이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이정표도, 경고문도 없는 편안한 길입니다. "웜우드야, 지옥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은 갑작스런 낭떠러지가 아니다. 오히려 푹신하고, 경사가 너무나 완만해서 걷기 편한 길이지"
지하의 집무실에서 스크루테이프가 마지막 문장을 적습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는 왜 자신이 지옥문앞에 서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겠지. 인간의 영혼을 사냥하는 건 거대한 사건이나 칼날이 아니라 일상과 안일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살인보다는 도박이 그를 빛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어 " 스크루테이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접습니다.
테오는 안개와 함께 미궁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웜우드는 이제 숨지도 않고 테오의 바로 옆에서 나란히 걷습니다. 테오는 그것이 친구의 그림자인지, 자신의 그림자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두려워하지 마, 테오. 넌 아주 잘하고 있어. 불편한 마음은 조금 들겠지만 무시해버려. 네가 가는 이 길이 아주 편안하니까, 그걸로 된 게 아니겠어?” 안개는 더욱 두꺼워지고 빛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