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조카 웜우드에게.
네가 맡은 인간 환자가 자기 패거리들과 함께 잘 웃는다는 보고를 받았다. 패거리들이 변함없이 꾸준한 냉소하는 자들과 속물이라는 소식은 잔치를 벌일 일이지만, ‘잘 웃는다’는 것은 우리로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인간의 웃음’에 대한 너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겠다.
인간이 웃는 이유 4가지 (기쁨, 재미, 농담, 경박함)
첫 번째는 '기쁨(Joy)'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종류지. 원수(하나님)와 그를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웃음은 천상의 음악소리와 같고 우리에겐 혐오스러운 소음이나 다름없다. 기쁨이 있는 곳이라면 너는 즉시 그 자리를 피하거나, 인간의 관심을 반드시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정말이지 이 기쁨이라는 것은 지옥의 위엄과 엄격한 품위를 떨어뜨리니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라고!
두 번째는 '재미(Fun)'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 자체로는 우리에게 거의 쓸모가 없다. 재미를 느끼는 인간은 자비, 만족, 용기와 같은 여러 악들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유혹이 잘 먹혀들지 않거든. 아주 가끔 인간이 인생의 중요한 가치나 원수가 뜻하는 바를 잊어버리게 하는데에는 유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령, 현재 직면해야 할 일을 덮어 버리거나 고달픔을 이기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며 시간만 죽이게 하는 것들처럼 말이야.
세 번째는 '농담'이다. 나는 지금 삼류 악마들이나 쓰는 ‘음탕한 농담’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하나 짚고 넘어가기로 하지. 음탕한 농담이 모두에게 효과가 있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 두도록. ‘음담패설을 즐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중 하나 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러한 인간적인 특징을 이해하고 서로간에 연민과 유대감을 더욱 느끼게 되는 인간에게 이런 농담은 효과가 없지. 반면에 오로지 음탕한 농담 따먹기나 하기 위해 눈이 벌개진 인간들에게나 효과가 있지.
내가 특히 강조하는 농담은, 지적인 우월감을 동반한 농담이야. 이것은 아주 훌륭한 도구지. 네 환자인 사일러스가 친구를 깎아내리면서도 "그냥 농담일 뿐인데 왜 그렇게 진지해? 그게 그렇게 정색할 일이야?" 라거나 “에이 농담이야. 농담. 나는 농담도 못해?” 라는 말로 자신의 수치심, 죄책감 같은 것들을 싹 덮어버리고,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이 느껴야할 감정들을 느끼도록 만들어라. 비겁함과 잔인함을 농담과 유머라는 포장지로 감싸는 법을 인간들에게 가르쳐주면, 그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가족, 형제자매, 친구 등등 주변의 사람들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경박함'이지. 이것은 농담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기술이다. 누군가 진지한 것,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주장할 때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건 너무 구식이야” "인생 뭐 별거 있어? 사는게 다 그게 그거지" “ 너나 잘하라지” 라는 태도가 사일러스의 영혼을 지배하게 해라. 경박함은 냉소와 닮아있고 영혼을 단단하게 굳게 만들어 원수의 목소리가 스며들 틈을 없애버린다. 곧 인간들은 곧 수치심과 죄책감 등을 없애버리고 당당하게 무례함을 보일 것이다.
봐라, 사일러스가 이제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지 않느냐? 그는 이제 큰 죄를 지을 필요도 없다.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거창한 죄는 오히려 그를 회개하게 만들 위험이 있지. 하지만 모든 것을 비웃는 '경박함'은 그를 지옥으로 이끌 것이다. 사일러스는 제발로 지옥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강물은 잔잔하고, 우리는 그저 지옥문을 열어두기만 하면 된다. 폭풍우로 배를 몰아 지옥으로 이끌 수고로움 따윈 결코 필요 없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남탓을 하는 등 수치심을 잊은 인간은 우리에게 가장 맛 좋은 먹잇감이다. 자신이 무례하다는 사실조차 "쿨한 유머"이고 “뒤끝 없다” 라고 믿는 저 오만스러운 꼴을 보라지. 사일러스는 이제 자신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경박한 농담으로 여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승리하는 방식이다.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농담과 경박함으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 말이다.
자, 웜우드. 이제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겠지? 사일러스 주변에 끊임없이 바람직한 친구들을 붙여주고, 그가 진지해질 기회를 박탈해라. 진지한 태도를 보일 기미라도 생긴다면 "인생은 어차피 농담이야" 라고 달콤하게 속삭여 주는 거다.
명심해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낄낄거리거나, 킥킥거리거나 그러한 경박한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지. 순수한 기쁨이나 재미로 인해 나오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을 향해 비웃거나 냉소하는 음흉한 웃음소리 말이다. 사일러스가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게 해라. 그 웃음이 멈추는 순간, 그는 기꺼이 우리 식탁의 메인 요리가 되어줄 것이다.
너의 노련한 숙부, 스크루테이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