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치키차카 Mar 04. 2024

나뒹구는 낙엽을 밀어주는 바람처럼 나를 사랑해야지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 건, 사랑해 줄 수 있는 건.

유달리 나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이 꽤나 자주 있는 편인데 일하다가 자꾸 막힐 때라던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때라던가, 술에 잔뜩 취해 잠들었는데 다음 날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을 때라던가, 잘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도저히 잘해지지 않을 때라던가, 별 일 아닌데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를 때라던가.

다 말하기도 힘든 이러저러한 이유들 중에 내가 싫어지는 가장 큰 순간은 단연코 '혼자 있을 때'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생각할 때'가 될 수 있겠다.


혼자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고, 과거의 일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꼭 내가 마주하기 싫은 모습들만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마주하기 싫은 나의 모습들에 괴로워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혐오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결국에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다소 파괴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때쯤에는 '그건 아니야'라고 아무리 속으로 되뇌어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생각과 '그' 감정을 떨쳐내기가 힘들어진다.




어느 날은 각 잡고 앉아 나의 자기혐오의 근원은 어디일까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자연스레 조금 더 어릴 때로, 더 어릴 때로 거슬로 올라가다 드디어 첫 자기혐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건 허무하게도 어린 시절 꾸었던 꿈에서 시작되었다.

천둥 번개가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고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린 나는, 집 밖으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늙은 노숙인이 나를 막아서더니 무서워 굳어버린 나를 번쩍 들어 올려 하늘에 대고 뭐라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천둥소리,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노숙인의 중얼거림은 서서히 선명해졌고, 이내 내 귀에 들린 그의 말은 '이 아이는 악마입니다. 나쁜 아이입니다.'였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내가 저런 꿈을 꾼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겠으나 지금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강렬한 저 꿈밖에 없다. 나는 지금까지도 무의식 속에 나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나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 근원이 실체 없는 꿈속 늙은 노숙인의 말이었다니. 나는 허무하면서도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실체가 있다면 해결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체가 없다니. 그럼 나는 어떻게 내 자기혐오를 떨쳐낼 수 있을까. 스스로 내린 답은 다소 간단했다. '나를 사랑하자.'




'스스로를 사랑해 줘야 돼.' 내가 아이들을 상담할 때마다 꼭 한 번씩은 하는 말이다. 남에게 말할 때는 참 쉬웠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도무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또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 술에 취하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밖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부던히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썼다. '나도 사랑받을 수 있어'라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줘야만 완성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집에 혼자 누워있었는데 또다시 야금야금 생각들이 덮쳐오려고 하길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책 한 권 들고 집 앞 카페로 향했다.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책을 읽다 문득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낙엽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걸 보게 되었다. '저 낙엽들은 언제 또 청소하려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낙엽과 내가 겹쳐 보이는 것이다. 다 말라 바스라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이, 쓸모도 없이 사람들 발에 채일뿐인 낙엽이. 나와 겹쳐 보였다. 울컥-하는 감정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내가 울컥한 건 낙엽 때문이 아니라 바람 때문이었다. 묵묵히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 보잘것없는 낙엽일지라도 여전히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 이는 낙엽에게 퍽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앞으로 나갈 힘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엔 전부였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랐을 때 나는 다짐했다.


'바람이 되자.'


그래, 바람이 되자. 바람의 마음으로 사랑하자.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불현듯 찾아오는 자기혐오적 생각과 감정을 다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나를 사랑해 줄 방법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나도 사랑받을 수 있어'는 타인을 통해 증명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했으니,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니 부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를 나뒹구는 낙엽을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의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자.

다 말라 바스라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고 스스로가 생각될지라도, 묵묵히 뒤에서 밀어주는. 여전히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의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