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재와 환상

<사랑은 길고양이 같라서> 24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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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만든 건 아닐까.

빛처럼 쏟아졌지만,

잡히지 않던 그 감정의 이름.



우리는 늘 사랑을 꿈꾼다.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줄 거라고, 그 모든 것 따뜻함과 찬란함이 실재하는 무언가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토록 확신했던 사랑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가 있다. 이건 진짜였을까?

아니면 내가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조각들이었을까? 사랑은 실재일까, 환상일까. 이 질문은 너무 오래된 것이라서, 사람들은 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나는 한때 사랑이 확실한 실체라고 믿었다. 온몸으로 닿을 수 있고, 손끝에 닿으면 따뜻하고, 눈빛만 봐도 마음이 전해진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따뜻함은 때로 금세 식어버리는 물기였고, 눈빛 속의 진심은 나만의 해석일 때도 있었다. 빛이라고 믿었던 감정은, 어쩌면 어둠이 만든 착시였는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말했다. 사랑은 현실 너머의 완전함을 향한 그리움이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사랑은, 그저 누군가에게 투영한 이상(理想)의 그림자일까? 어쩌면 우리는, 상대가 아닌 상대에게 기대한 환상에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종종 실재와 환상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는 함께 웃던 기억들이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때로는 손잡았던 순간조차 꿈처럼 흐릿하다. 문학과 영화는 언제나 이 경계를 탐색해 왔다. 콜롬비아 소설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속 사랑은 마법 같지만, 그 마법이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현실에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허상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말한다. ‘사랑은 억압된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우리는 무의식 속의 갈망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고, 그를 사랑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사랑은 자주 환상에 머무른다.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사랑의 형태에 중독되어 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을 스스로 점점 더 잃어간다.


현대의 사랑은 또 다르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잘 짜인 장면, 연출된 감정, 필터 씌운 일상을 본다.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고 믿는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지루하고 엉성한데, 그곳의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완벽하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그렇게 반짝이지 않는다. 때로는 눈물로 번지고, 때로는 말없이 멀어지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식는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고, 그 안에 나를 온전히 던졌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깨달았다. 내가 사랑한 건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보고 싶었던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걸. 그렇다고 그 사랑이 거짓이었을까? 그건 아니다. 그 환상 속에서도 나는 웃었고, 울었고, 자랐다. 진짜였던 건, 그 모든 경험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이다.


사랑은 이상을 꿈꾸게 하지만, 결국 현실 안에서 살아야 한다. 부족하고, 실망하고, 때론 무너지는 그 현실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머물겠다고 결심할 때 비로소 사랑은 환상이 아니라 실재가 된다.


사랑은 질문이다.

“이건 진짜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환상일 뿐일까?”

그 답은 한 번에 정해지지 않는다. 시간과 함께 바뀌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어떤 날엔 실재였다가 어떤 날엔 환상이 된다. 사랑이 실재인지, 환상인지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흔들었고, 울렸고,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랑은 진짜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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