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어 이전의 감정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25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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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말보다 먼저 피어났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직 단어를 몰랐던 시절,

눈빛과 손길로 서로를 느꼈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떨림이,

우리 안에 숨 쉬고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살아간다. 노래가 되고 시가 되며, 수많은 예술작품의 중심에 놓인 이 감정은 과연 언제부터 우리 안에 있었을까? 언어가 탄생하기 전에도, 사랑은 이미 존재했을까?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까지도 느끼는 그 감정이, 언어 없이도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었음을 상상해 본다.

갓 태어난 아기는 말할 줄 모르지만, 어머니의 품에서 따스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말이 아닌 눈빛과 체온, 피부의 떨림이 오가는 그 순간, 이미 사랑은 완성된다. 언어 없이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깊이 연결된다. 이처럼 사랑은 언어의 탄생 이전부터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시작된 감정일지 모른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은, 언어가 생기기 전 아이와 부모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설명한다. 아이는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것은 조건 없는 수용과 믿음, 곧 사랑이다. 언어 이전의 세계에도, 우리는 감정을 전하고 받는 능력을 타고난 존재였던 셈이다.

자연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의 흔적을 발견한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 동물의 헌신, 짝을 잃고 슬퍼하는 동물의 눈빛은, 본능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몸짓과 체취, 함께 붙어 있는 시간 속에 감정이 흐르고 있다. 사랑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 가까운 감정이다.

예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언어로 다 담기 어려울 때 그 너머를 향한다. 시인은 침묵의 여백에 사랑을 숨기고, 작곡가는 말이 없는 음표로 마음을 전한다. 어떤 영화는 단 한 마디 없이도 두 인물의 깊은 사랑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 단어보다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향연(Symposium)』에서 사랑을 이데아에 대한 동경이라 했다. 그가 말한 사랑은 감각과 논리를 초월한, 말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감정이었다. 언어 이전, 인간은 직관과 감각으로 서로를 느끼고 연결되었다. 언어는 다만 그 감정을 나중에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였을 뿐이다.

음악을 떠올려 보자. 단어 없이 울리는 선율이, 때로 가장 진실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바이올린 한 음, 피아노의 여운 속에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한다. 그것은 말로 번역되지 않는 감정, 사랑의 기원이기도 하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봐도 사랑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공동체 유대를 위한 본능이었다. 말을 하기 전, 인간은 표정과 몸짓, 소리 없는 신호로 마음을 나누었다. 이 비언어적 교감 속에서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감정이자 사회의 뿌리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을 화려한 말과 이미지로 표현하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장식 아래에는 여전히, 말 이전의 사랑이 흐르고 있다.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감정은 설명할 수 없기에 더 깊다. 그것은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감정이며, 삶의 본질적인 힘이다.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사랑의 감정은 닮았다. 다른 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지라도, 그 안의 떨림은 같다. 언어가 다를지라도 마음은 통하고, 사랑은 그 틈을 넘는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언어 이전의 감정이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사랑은 단어가 아닌, 경험이다. 말보다 먼저 우리 몸에 새겨진 기억이고, 시간보다 오래된 감각이다. 눈빛 속에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언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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