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천 개의 얼굴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26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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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피었다 사라지는 꽃처럼,

매 순간 다른 빛깔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누군가에겐 속삭임이고, 누군가에겐 침묵이며,

또 다른 이에겐 이별이다.

사랑은 끝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사랑을 단 하나의 정의로 담을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사랑을 불꽃이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바람 같다고 한다. 속삭임 속에서 사랑을 찾는 이도 있고, 오래된 침묵 안에서 그것을 느끼는 이도 있다. 사랑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시간과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이다.


그 얼굴은 단 하나가 아니라, 천 개의 빛과 결을 품고 있다.


그의 첫사랑은 봄처럼 찾아왔다. 세상이 갑자기 선명해지고, 사소한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마주치는 눈빛 하나, 손끝에 닿는 떨림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사랑은 연약했지만 순수했고, 쉽게 부서질 만큼 투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여름처럼 타올랐고,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러나 여름의 열기처럼, 그 뜨거움도 끝없이 지속되진 않았다.


사랑은 가을이 되어 조용히 물러났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발걸음은 어느새 엇갈렸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에서도 온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별이 사랑의 부정은 아니다. 사랑은 때때로 자신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성숙해진다. 떨어진 낙엽이 흙이 되어 다시 생명을 길러내듯, 스러진 사랑도 또 다른 사랑의 밑거름이 된다.


겨울의 사랑은 말이 없다.

눈처럼 하얗고 고요한 사랑이 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관계, 말보다 존재가 더 큰 언어가 되는 사랑. 말을 건네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침묵 속에서도 온기를 느끼는 순간. 사랑은 가장 차가운 계절에서 때로 가장 따뜻한 모양을 하고 나타난다.


사랑은 연인의 얼굴뿐 아니라 가족의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의 손길, 아버지의 말 없는 응시, 형제의 장난기 속에도 사랑은 숨 쉬고 있다. 친구의 미소, 지인의 안부, 낯선 이의 작은 친절도 사랑의 파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틈마다, 사랑은 은밀히 스며들어 우리를 지탱한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말을 허락받지는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만 머무는 사랑도 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사랑, 시간 속에 묻힌 첫사랑,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를 향한 그리움.

그러한 사랑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우리를 자라게 한다. 말하지 못한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다. 그 침묵조차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색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뜨거운 붉음, 쓸쓸한 푸름, 따뜻한 노랑이 번갈아 가며 마음을 적신다. 어쩌면 사랑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통해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잃고, 다시 시작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사랑은 때로 예고 없이 찾아오고, 때로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다.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의 향기를 닮은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한참을 잊고 있던 노래 한 구절, 오래된 사진 한 장, 그 안에서 사랑은 조용히 다시 피어난다. 익숙한 일상 속 어딘가에서, 사랑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사랑은 상처도 남긴다. 붙잡았던 손이 떨어지고, 함께한 기억이 흐릿해진다. 그러나 아픔조차 사랑의 일부다. 그 흔적이 다시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기에, 우리는 상처를 받아들인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이 사랑하는 힘이 된다.


어떤 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고, 어떤 사랑은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그 모든 사랑을 통해 웃고 울며, 자신을 스스로 마주한다.


사랑은 우리의 거울이자, 우리의 바람이며, 때로는 침묵 속의 기도다.

그리고 결국, 사랑은 우리를 완성해 간다.


사랑은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오늘 당신의 사랑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그 사랑은, 어떤 계절을 닮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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