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색깔

<사랑은 길고양이 처럼> 27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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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형체 없는 빛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불꽃으로,

또 누군가는 조용히 스며드는 푸른 안개로 기억한다.

사랑은 마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수천의 색으로 우리 앞에 피어난다.



사랑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사랑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녹아 있는 감각이다. 그 감정은 때로는 눈빛에, 때로는 침묵에, 또는 한 잔의 따뜻한 커피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다. 사랑은 물질이 아닌 빛처럼 존재하며,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한다. 어떤 사랑은 열정적인 붉은빛을 띠고, 어떤 사랑은 이끼 낀 호수처럼 고요한 푸른빛을 띤다. 또 어떤 사랑은 겨울 햇살처럼 희미하고 따뜻하며, 어떤 사랑은 오래된 상처처럼 짙고 검다.


첫사랑은 흔히 붉은빛을 지닌다.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감정은 불처럼 뜨겁고 눈부시다. 첫사랑의 눈동자엔 온 세상이 담기고, 손끝에 닿는 바람조차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열정은 쉽게 꺼지기도 한다. 타오르는 불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동백꽃』 속에서 점순이를 향한 ‘나’의 마음은 투정과 짓궂음으로 포장되지만, 실은 소년의 진심 어린 붉은 사랑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랑은 붉은빛을 벗고 푸른색을 입는다. 푸른 사랑은 격렬함 대신 깊이를 택한다. 조용히 곁에 머물고, 기다려주며, 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사랑이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과 다림의 관계는 이런 푸른 사랑을 닮았다. 병든 몸으로 사진관을 지키는 정원의 고요한 일상에 다림은 스며들고, 말보다 표정으로, 스킨십보다 시선으로 서로를 감싼다.


또 어떤 사랑은 노란빛이다.

햇살처럼 반짝이고, 마치 설탕을 뿌린 귤껍질처럼 익숙하고 달콤하다. 도시에서 지친 주인공 혜원이는 시골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삶을 회복하는 한국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는 노란 사랑의 따뜻함을 담고 있다. 그녀가 나무를 베고, 밥을 짓고,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진실하다. 노란 사랑은 가족, 친구, 또는 자신을 스스로 향한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밝고 따뜻한 색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어떤 사랑은 회색이다. 확신할 수 없는 경계 위에 머무르며, 가슴 한쪽을 흐리게 만드는 사랑. 영화 <건축학개론> 속 승민과 서연처럼, 한때는 전부였지만 지금은 어색하게 멀어진 관계. 회색 사랑은 과거의 그림자를 품고 있으며, 끝나지 않은 질문으로 남는다. 그것은 아직 정의되지 않은 감정이고, 다시 시작될 수도, 끝맺음도 없는 감정이다. 모호함 속에서 피어나는 이 사랑은 때로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일지도 모른다.


검은 사랑도 존재한다.

너무 깊어 어두운, 때로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사랑.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과거의 사랑을 붙잡으려다 자신을 무너뜨리고 만다. 검은 사랑은 독처럼 번지며, 자신뿐 아니라 상대도 상처 입힌다. 그 안에는 순수함도 있지만, 동시에 파괴적 욕망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단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검은 사랑은 우리가 감정을 진심으로 느끼고,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사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랑은 때때로 흰색이다.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아무 대가 없이 주는 마음, 오랜 세월 함께한 인연들.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의 철호는 무너져가는 가족을 지탱하려고 애쓴다. 그것은 희생이며, 조건 없는 사랑이다. 흰 사랑은 눈처럼 고요하고, 아이의 눈빛처럼 맑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할수록, 우리는 이 순수한 사랑의 존재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흰 사랑은 강요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를 지탱해 준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무지갯빛이다.

한 가지 색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사랑. 날마다, 계절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마다 사랑의 색은 달라진다. 사랑은 처음에는 붉은 열정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며 푸른 신뢰로, 노란 온기로, 검은 깊이로 변화해 간다. 1990년대의 감성을 담은 영화 <비 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사랑은 마치 물감이 번져가는 풍경화와 같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어떤 색인가?

그 색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늘은 노란빛일 수 있고, 내일은 회색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색이 당신에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변화하며, 그 모든 색의 층위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더욱 아름답게 완성해 간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사랑은, 결국 삶을 칠하는 물감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삶의 캔버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빛으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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