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친 날

<사랑은 길고양이처럼> 28화

by 양창식



20241005_11281==0.jpg



사랑은 조용히 스며들듯 다가오고,

무심히 스쳐 가듯 떠난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너무 늦은 뒤다.

어떤 날은 그냥 평범한 하루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사랑을 놓친다는 건 단순히 이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찰나, 우리가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붙잡을 수 있었던 순간을 흘려보낸 데서 비롯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흘러간 평범한 하루가, 알고 보면 결정적인 날이었음을 우리는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사랑이 되어버린다.

그날의 기억은 종종 흐릿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문득 들려온 노래 한 소절, 지나가던 거리의 풍경, 오래전 받았던 메시지 하나가 그날을 불현듯 떠올리게 한다. 사랑을 놓친 날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온 일상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김하인의 소설 『국화꽃 향기』는 사랑을 놓친 사람의 후회와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도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남자는 결국 사랑을 잃는다. 마음속에선 수없이 말했던 문장들이 입 밖으로는 끝내 나오지 못한 채, 그녀는 떠나고 만다. 사랑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 마음속에서 사라져간다.


우리는 종종, 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놓친다. 너무 소중해서 망가질지 두려워했고, 너무 벅차서 뒷걸음질 쳤다. 그 마음을 다 말할 수 없어서, 혹은 말하는 게 두려워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선택이 사랑을 놓치는 길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그런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첫사랑의 아릿한 기억 속에서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한 두 사람의 서사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는다. 젊은 날의 서툰 감정 표현, 말 한마디의 타이밍이 어긋난 순간들. 그렇게 엇갈리고 나면, 시간이 지나 아무리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도 그 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놓친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어긋나기도 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사랑을 원하지만, 너무 늦거나, 너무 서툴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놓친 자신과 마주한다.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자주 그렇게 멀어진다. 마음속에서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감정이었지만, 말로 꺼내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경우. 혹은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멀어졌을 때. 우리는 ‘그날’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분명히 사랑을 놓쳤음을 안다.


제주도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바람>의 한 장면처럼, 바다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사랑을 떠올리는 순간이 있다. 넓고 깊은 바다는 닿을 듯하지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 파도처럼 다가왔다가 밀려나는 사랑. 그 바다 위에 서서, 우리는 붙잡을 수 없었던 마음을 다시 떠올린다.


하지만 사랑을 놓친 날이 반드시 후회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아픔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비록 지나간 사랑이었지만,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다음 사랑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다. 지난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예전보다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놓친 날은, 사실 사랑이 있었던 날이다. 우리가 그만큼 사랑했기에, 놓쳤다는 사실이 아프게 남는 것이다. 그날을 후회만으로 기억하지 말자. 오히려 그 기억을 품고, 더 나은 사랑을 위한 준비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당신은 언제 사랑을 놓쳤는가? 그날은 어떤 계절이었고, 어떤 빛깔이었는가? 혹시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된 소중함이 있는가? 우리는 모두 그날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아픔은 시간을 지나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은 다시 사랑을 믿게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사랑의 색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