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나간 모든 사랑에게

<사랑은 길고양이처럼> 32화

by 양창식




사랑은 지나간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늦은 밤 문득 흘러나온 노래한 줄에,

낡은 책갈피 속 누렇게 바랜 사진 한 장에,

언젠가의 사랑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첫눈처럼 다가온 너에게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던 그날을 기억한다. 너는 내 삶에 첫눈처럼 내렸다. 우리는 어린 마음으로 사랑을 배웠고,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 서툶마저 설렘이던 시절이었다. 네가 웃을 때마다 내 세상에 햇살이 들었고, 너의 그림자조차 사랑스러웠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강변, 손을 조심스레 잡았던 극장 안, 수줍은 고백이 어색하던 밤. 그 모든 순간이, 나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첫눈처럼 왔던 사랑은 그렇게, 봄이 오기 전 조용히 녹아 사라졌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멀어졌고, 헤어짐은 너무도 조용히 우리를 지나갔다. 그 후로도 수많은 계절이 지나갔지만, 너는 여전히 내 마음 한쪽에서 맑은 눈빛으로 머물고 있다. 첫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감정의 첫 페이지로 남는다.


찬란했지만 뜨거웠던 너에게

너와의 사랑은 불꽃같았다. 타오르는 만큼 눈부셨고, 그만큼 위태로웠다. 우리는 서로를 뜨겁게 원했고, 하루하루가 벅찬 감정으로 가득 찼다. 새벽까지 걸으며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었고, 비 오는 날 한 우산 아래 서서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꽃은 결국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에, 점점 서로를 가두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쌓인 집착과 상처들이 우리를 무너뜨렸고, 끝내 우리는 서로를 놓았다.

너와의 사랑은 격렬했고, 아팠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끝에서 나는 배웠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동행이라는 것을. 때로는, 진짜 사랑이란 놓아주는 용기라는 것을.


조용히 스며들었던 너에게

너와의 사랑은 마치 오래된 시처럼 조용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크게 웃지도, 눈물 흘리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같이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편안했다.


사랑의 시작도 조용했듯, 우리의 이별도 그러했다. 누구의 잘못도 없이,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흐려지는 그런 이별. 하지만 이상하게도, 너와의 사랑은 내 안에 오랫동안 따뜻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그 잔잔한 시간이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와의 사랑을 끝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어쩌면 내 삶을 조용히 밝혀준 등불 같은 것이었기에.


아직도 마음속에 있는 너에게

시간이 흐르고, 많은 계절이 지나갔지만, 가끔 나는 여전히 너를 떠올린다. 너의 웃음소리, 너의 손짓, 너의 습관 하나하나가 어느 날 불쑥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네가 좋아했던 노래를 우연히 듣거나, 네가 좋아하던 계절이 오면, 나는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사랑은 내 시간 속에 아직 살아 있다. 지나갔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고, 그 시간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너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를 지나간 모든 사랑에게

너희가 있었기에 나는 사랑을 알았고, 사랑 안에서 상처받았으며, 그 상처로 인해 더 단단해졌다. 어떤 사랑은 나를 웃게 했고, 어떤 사랑은 나를 울게 했으며, 또 어떤 사랑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너희가 남기고 간 조각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퍼즐이 되었다(너희라고 집합명사로 칭해서 미안하지만).


그래서 고맙다. 모든 사랑에. 내게 다녀가 준 모든 이름에. 너희 덕분에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또다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서로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편지가 너희에게 닿지 않더라도, 나는 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