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43화
목적지를 찍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다.
네가 함께였던 길이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우리는 지도 없이 더 많은 풍경을 만났다.
그 길 위에서 너를 만나고, 또 너를 잃었다.
이 편지를 어디에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늘 지도를 따라 길을 찾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네비게이션이 가리키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나는 오늘도 길을 나서며 생각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골목을요. 방향을 잘못 들어선 덕분에 우연히 마주친 그곳을. 그때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짧게 웃었던 그 순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경로에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했죠.
가끔 영화 <봄날은 간다>가 떠오릅니다.
주인공들이 차 안에서 나누던 대사들, 그중에서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은 여전히 제 안에 메아리처럼 남아 있어요. 그 대사는 처음 들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오네요. 우리도 결국엔 서로를 향한 마음의 방향이 어긋나 버렸으니까요.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새 네 걸음은 멀어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때 이미 길을 잃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당신과 처음 떠났던 여행을 기억해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던, 아주 충동적인 하루.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끄고, 큰 도로를 벗어나 낯선 동네로 흘러들었죠. 길가에 세워진 이름 모를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창밖 노을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았던 그 순간. 당신이 웃으며 말했죠.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대답했어요.
"어디든 좋아. 너랑 함께니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우리는 목적지보다 여정을 더 사랑했어요. 사랑도 그랬죠. 정답을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함께 걷고 싶은 마음 하나로 시작된 길. 당신과 함께라면 길을 잃어도 괜찮았어요. 되돌아가야 한다면, 그것마저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나의 방향이었고, 내가 머무르고 싶은 풍경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결국 서로 다른 갈래로 걸어갔죠.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았는지, 지금도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워요. 아마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고,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려 했던 걸지도 몰라요.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함이, 결국 우리 사이의 속도를 망가뜨렸는지도 몰라요.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는 말했죠. “우리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말처럼, 우리는 늘 앞만 보고 걸었고, 어디론가 향하려고만 했어요. 그 과정에서 지금, 이 순간의 서로를 놓친 건 아닐까요?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길을 걷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거리, 우리가 들렀던 카페, 밤이 되면 불빛이 따뜻해지는 그 골목을. 그곳에는 여전히 당신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나무 벤치에 앉아 네가 했던 말을 떠올리기도 하고, 우리가 멈췄던 건널목 앞에서 괜히 한참을 서 있기도 해요.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혹시 우리가 너무 정확한 길만을 찾으려고 한 건 아닐까. 사랑이라는 건 애초에 지도에 없는 길을 걷는 일인데, 우리는 너무 안전하고, 너무 효율적인 길만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서로를 놓쳐버린 게 아닐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제 네비게이션이 가리키지 않는 길이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길에서 너를 처음 만났고, 가장 진짜 같았던 너의 표정을 볼 수 있었던 곳도 바로 그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였으니까요. 길을 잃는다는 건 때로,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이고 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어요.
만약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하나의 지도로 남아 있다면, 나는 기꺼이 다시 그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어요. 너는 그 길 어디에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 기억 속을 걷다 보면 언젠가 같은 갈래에서 우리가 마주칠 수도 있겠죠. 그게 지금이 아니더라도 괜찮아요. 너와의 여정은 여전히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나는 오늘도 네가 없는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는 여전히 너의 흔적이 있어요. 네가 웃던 순간, 네가 바라보던 풍경, 네가 했던 말들. 그 모든 것이 나의 방향이 되고, 때론 위로가 됩니다.
언젠가,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다면, 그때는 꼭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으면 해요. 그곳이 어디든, 이번엔 우리가 같은 길 위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길 위에서, 당신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