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처럼> 55화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한다.
불안정한 미래 앞에서도 사랑을 선택하고,
그 끝에 남겨질 것을 알면서도 함께 걷는다.
그리고 사랑이 끝났을 때,
그 감정들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사랑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나눈 마음이, 나의 시간 속에 진심으로 존재했던 감정이, 단지 끝났다는 이유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만, 관계는 시간과 함께 소멸하거나 다른 무늬로 변한다.
누군가는 기억 속에 사랑을 묻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 흔적을 더듬는다. 기한이 지난 사랑은 마치 봉인되지 않은 편지처럼,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남는다.
이별 후, 사랑은 흔적이 된다.
그 흔적은 오래된 사진일 수도 있고, 익숙한 향기일 수도 있으며, 잊히지 않는 한마디일 수도 있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 속 문장은 말한다.
“사람은 변하지만, 기억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지나가도, 그것이 남긴 감각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는다. 함께 걷던 길, 함께 들었던 노래, 그 순간의 눈빛 하나까지—모든 것은 기억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존재를 이어간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그런 사랑의 잔상을 섬세하게 비춘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 같은 대화도 시간의 맥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읽힌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움직인다.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르지만, 감정은 자주 그 반대 방향을 걷는다.
사랑이 끝난 후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후회일지도 모른다.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왜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을까.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지나가 버리는 줄 몰랐다.”
사랑은 당연하게 여겨질 때, 가장 소중한 것임을 잊는다. 그리고 사라진 뒤에야, 그것이 얼마나 깊은 감정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사랑을 덮기 위해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사랑은 단순히 감정을 갈아 끼우는 일이 아니다. 김혜리 영화평론가는 말한다.
“우리는 새로운 사랑으로 과거의 사랑을 덮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통해 변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랑은 현재의 나를 형성하고, 앞으로 만날 사랑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건축학개론> 속 첫사랑은 되돌릴 수 없지만, 여전히 현재의 감정에 스며든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삶의 결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기한이 지난 사랑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다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마주칠 수 있고, 그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는 조용히 말한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기한이 지난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
그 사랑은 우리 안에 남아, 새로운 관계를 준비하게 하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어떤 사랑은 후회로, 어떤 사랑은 그리움으로, 어떤 사랑은 삶의 지혜로 남는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름을 바꾸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우리 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