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56화
요즘은 사랑도 계산이 필요한 시대.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얼마만큼 손해 보지 않을지를 따진다.
하지만 마음에는 바코드가 없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감정이 숨 쉬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커피 한 잔, 집세, 명품 가방, 시간, 노동, 심지어 감정의 노동까지, 삶의 거의 모든 것에는 바코드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사랑도 예외일 수 있을까?
사랑에는 가격이 없다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사랑조차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다.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묻는다.
“무슨 일 해요?”, “연봉은?”, “집은 있나요?”
감정보다 조건이 먼저 계산되는 관계, 그 안에서 ‘무조건의 사랑’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어느 날 지인이 무심코 말했다.
"사랑도 결국엔 가성비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울림처럼 남았다. 정말 사랑도 계산의 테이블 위에서 거래되어야 하는가?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들은 사랑도 결국 교환이라고 말했어. 줄 수 있는 것과 받을 수 있는 것의 균형이 깨지면 사랑은 사라진다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과연 감정일까, 혹은 일종의 계약일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사랑을 ‘투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애는 ‘비용 대비 만족도’로 평가되고, 결혼은 ‘계약’이라는 단어로 불린다. 사랑의 언어마저 경제의 논리에 잠식되어 버린 셈이다.
2018년 영화 <너의 결혼식>에서 우연은 10년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는 결국 ‘경제력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별을 맞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묻는다. “내가 돈이 많았으면, 우리 인생은 달라졌을까?”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아프다.
사랑이 감정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계산적이고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상대의 조건이 내 삶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내가 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가?”보다 앞설 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코드 없는 사랑은 가능할까? 그런 사랑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할까? 2019년 드라마 <눈이 부시게>라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인공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포기한다. 그의 미래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도,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 마음만큼은 흐려지지 않는다.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도 없이 살아가는 이에게 수선화가 되어주고 싶다.”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은 조건도, 계산도 없는 선물 같은 마음이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알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한 무조건의 사랑. 끝없이 이해하고 기다리는 친구 간의 우정. 그리고 아직도 누군가는 믿고 있는, 서로의 부족함마저 감싸 안는 연인의 사랑.
바코드 없는 사랑이란 결국, ‘너라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스펙이나 자산이 아니라, 그 사람의 웃음, 말투, 존재 전체를 사랑하는 것. 사랑이 거래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이 사람이 가진 것을 사랑하는가?”
바코드 없는 사랑은 세상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주 보이는 사랑이 아니라, 끝까지 남는 사랑이다. 세상은 바코드를 요구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진심을 원한다.
“사랑은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바코드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은 표를 붙일 수 없기에 더 귀하고, 값을 매길 수 없기에 진짜다.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