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57화
만약 사랑에도 확률이 있다면,
우리는 더 쉽게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가능성 앞에서 더 많이 망설이게 될까?
사랑이 수치로 환산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사랑일까?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불확실함을 마주한다. 마음은 확신을 원하지만, 사랑은 절대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묻는다. “사랑의 확률은 몇 퍼센트인가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늘 예측 불가능하고,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앞에 두고도 망설인다. 감정의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한 사람이 인생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은 6분의 1 정도라고. 통계적으로 보자면, 단 한 번의 진실한 사랑을 경험할 가능성조차 높지 않다. 하지만 과연 사랑이 통계로 설명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할 때 확률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이유 없이 끌리고, 논리와는 다른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사랑은 수학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영화 〈건축학개론〉을 떠올려 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수백 가지 우연이 겹친 끝에 다시 만나고, 그 만남은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기억’에 더 가까워진다. 확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 사랑은 그렇게, 통계나 예측을 넘어서는 인연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흔히 “사랑은 확률 게임”이라는 말을 한다.
소개팅, 데이팅 앱, SNS까지—사랑은 점점 시스템화되고 있고, 마치 어떤 공식을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 몇 명을 만나야 그중 한 사람과 진지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랑을 수치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축소하는 위험도 함께 갖는다. 사랑은 통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두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사랑에 닿는다.
정치적 장벽, 물리적 거리, 수많은 제약 속에서 그들이 다시 만날 확률은 1퍼센트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1퍼센트를 선택한다. 사랑은 그렇게, 가망 없어 보이는 확률을 뚫고 기적처럼 도달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오직 두 사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통계도, 법칙도 없다.”
그 말처럼 사랑은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 특별하다. 만약 사랑이 언제나 성공하는 공식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그토록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의 가능성, 상처의 두려움, 그리고 이별의 아픔—그 모든 불확실성이 있기에 사랑은 더욱 소중하다.
때로 우리는 확률이라는 말 뒤에 숨는다.
“애초에 확률이 낮았잖아.” “이건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어.” 그렇게 현실을 위로받으려 한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그런 계산을 넘어서려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감정을 지켜내기 위한 인내, 흔들림 속에서도 멀어지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 진짜 사랑의 ‘확률’을 만들어간다.
어느 인터뷰에서 평생을 함께한 노부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함께 살아온 건 확률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어요.”
그 한 문장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사랑은 결국 반복되는 선택이다. 오늘도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어제보다 더 이해하고 내일도 곁에 있고 싶다고, 그렇게 매일 선택하는 감정. 그 쌓인 선택들이 모여 진짜 사랑의 가능성을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안다.
사랑의 확률은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 순간, 확률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