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64화
사랑은 새롭게 시작해도, 어쩐지 낯익다.
다른 얼굴, 다른 이름인데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사랑은 기억의 반복이자,
내면의 무의식이 쓰는
오래된 각본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익숙함 속에서 자라난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과거를 지우고자 하지만, 정작 그 사랑 속에서 다시금 옛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왜 같은 사랑을 반복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은 본질적으로 반복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우리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지 오래된 패턴이 그 감정을 이끌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 남자가 있다. 스물셋, 대학 시절의 첫사랑과 이별한 그는 이후 몇 번의 사랑을 더 경험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는 지난 사랑을 지웠다고 믿었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익숙한 장면들이 반복되었다. 말투, 눈빛, 다툼의 방식까지도 어딘가 첫사랑을 닮아 있었다. 그는 점점 잊은 줄 알았던 이름을 떠올렸고, 결국 깨달았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를 따라 사랑하고 있었다.
이런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심리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은 '애니마(Anima)‘와 '애니무스((Animus)'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내면에 이상적인 이성상이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이미 우리 안에 형성된 이상형의 투사일 수 있으며, 그 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사랑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그 반복을 통해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도 있다.
『500일의 썸머』에서 주인공 톰은 썸머와의 사랑이 끝난 후, 또 다른 여성을 만나지만 그 관계 속에서도 반복이 일어난다. 그는 과거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같은 실망을 경험한다. 영화는 사랑이 개인의 내면적 기대와 욕망의 반영이며, 그 안에서 반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사랑은 실패일까,
아니면 성장의 과정일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에서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라고 말했다. 사랑은 단순히 타인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같은 사랑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다시 만나고, 점점 더 명확히 이해해 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반복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늘 비슷한 유형의 상대에게 끌리고, 어떤 사람은 같은 패턴으로 관계를 망치며, 또 어떤 사람은 늘 같은 시점에서 이별을 맞이한다. 이것은 개인의 경험, 성향, 그리고 무의식 속 애착 방식이 반복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유년기의 애착 경험이 성인이 된 후의 사랑 방식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익숙했던 방식으로 사랑을 재현하며, 무의식적으로 익숙함을 택한다.
그렇다면, 이 반복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반복은 인간적이다. 하지만 그 반복을 자각하고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틀을 벗어날 가능성을 얻는다. 같은 사랑을 반복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달라지느냐이다.
사랑은 반복을 통해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그 완성은 결코 완벽함이 아니라, 자기만의 사랑의 방식에 다가가는 여정이다. 우리는 반복을 통해 더 깊은 사랑을 이해하고, 실패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배운다. 시인 황지우는 “사랑은 늘 나를 소모하면서, 타인을 배우는 일”이라 했다. 반복 속에서 우리는 소모되고, 다시 채워지고, 그렇게 자신을 다듬어 간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같은 사랑을 반복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실수하고, 다시 사랑하고, 또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한 존재가 되어간다. 반복은 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순환이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결국 ‘다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