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간을 잊는다

< 사랑은 길고양이처럼> 67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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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항상 어떤 '때'에 머무른다.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도 아닌, 영원한 '지금'이다.

사랑은 우리를 시간의 바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지나가도, 그 감정은 그 자리에 남는다.



사랑이 시작되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멈추거나, 혹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손목시계는 여전히 움직이고, 달력은 하루하루를 넘기지만,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 사랑은 시간을 잊는다. 아니,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다.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시간을 잊었다.

처음 손을 잡았던 날, 그 따뜻함은 한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도 온몸을 데웠다. 그날이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 번지던 빛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그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그 순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시간을 ‘보냈다기보다’ 시간을 잊은 채 존재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거나, 자정이 넘도록 전화를 끊지 못하고 웃고, 울고, 침묵했다. 사랑은 어쩌면 시간이라는 개념을 무력화시키는 힘일지도 모른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말했다.


“사랑의 기억은 시간을 순환시키고, 그 기억은 현실보다 더 생생하다.”


시간은 흐르지만, 사랑은 그 흐름 속에 머물거나, 때로는 되돌아간다.

이별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사랑은 그 시간 너머에 머문다. 그녀와 헤어진 지 벌써 5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어느 오후의 햇살 속에 머물러 있다. 그때의 공기, 그녀의 웃음, 두 손 사이의 온기.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었지만, 그 순간만은 변하지 않았다. 사랑은 그를 그 시간에 머물게 했고, 현실의 변화는 그의 기억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제시와 셀린은 아홉 해 만에 다시 만난다.

서로의 얼굴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보지만, 그 사이의 시간은 단지 숫자일 뿐이다. 그들이 다시 마주했을 때, 사랑은 마치 어제처럼 생생했고 시간은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했다. 사랑은 시간을 잊고, 다시 살아난다.

그는 지금도 문득, 그 시절의 노래를 듣고 멈춰 선다.

사랑이 지운 시간은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을 다시 살아간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다. 사랑이란 본래 시간을 유예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든, 어디서든 되살아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말했다.

“사랑은 시간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그 질서엔 규칙도 방향도 없다. 오직 사랑만이 기준이 되는 세계.

“사랑은 시간을 잊는다”라는 말은 단지 시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질 때, 하루가 짧게 느껴지고 기다릴 때는 하루가 영원처럼 길어진다. 시간의 감각이 흐트러지고,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우리를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그 자유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진짜 가치를 경험하게 된다.


그녀와의 시간은 멈춰 있었지만, 그는 그 멈춤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사랑은 흐르지 않고, 그를 잠시 머물게 했다. 그 머무름 속에서 그는 삶의 속도를 늦추었고, 존재의 깊이를 들여다보았다. 사랑은 시간을 잊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마저 잊는다. 그리고 그 잊힘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다시 만난다.


이제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그의 삶 속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시간의 유효기간이 지난 감정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현재형의 존재’다. 사랑은 시간을 잊고, 그 속에서 그는 여전히 사랑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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