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나를 만든다

<사랑은 길고양이처럼> 66화

by 양창식

사랑이 끝났다고

그 사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물결이 물러간 자리에

여전히 파문은 남아 있듯이.

사랑은 다시 나를 만든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깊이 사랑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마치 바다를 빠져나간 물결의 흔적처럼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사랑은 떠났지만, 그 사랑을 했던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다시 만든다.

그녀는 이별 이후에도 매일 그를 떠올렸다.

전화번호는 지웠지만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 맴돌았고, 함께 걷던 길에서는 무심코 그의 발걸음을 찾곤 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결국 그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마주했다. 그가 떠난 후, 그녀는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공허함에 잠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공간엔 그녀만의 호흡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깨달았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그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와의 사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과거의 그녀는 ‘사랑받는 사람’이었지만, 이별 후의 그녀는 ‘사랑했던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 차이는 작지만, 그녀의 삶과 감정, 선택의 결들을 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소설 『시간의 주름』에서 작가는 말한다.

“시간은 지나가도, 그 시간 안에 있던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문다.” 사랑도 그렇다. 흘러간 시간 속에 머물던 사랑은, 이제는 우리 안에 자리 잡은 현재가 된다. 이별 후에도 사랑은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형으로 삶을 구성한다.

사랑은 우리를 다시 쓰게 한다.

누구나 사랑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랑이 떠난 후에도,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 달라진 나를 마주하게 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주인공은 사랑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의 감정은 남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단지 경험이 아니라, 존재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더 정확히 알게 되고, 그 과정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그와 함께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예전엔 눈물을 자아냈던 그 곡은, 이제 그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안겨주었다. 그녀는 그 노래와 함께 웃었고, 지난 사랑에 감사했다. 사랑은 떠났지만, 그녀 안에 새로운 감정의 결을 남겼다. 더 섬세해진 시선,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경험. 그것이 바로 사랑이 남긴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선물은 그녀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랑의 단상(A Lover’s Discourse)』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대상이 사라졌을 때, 사랑은 더 이상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것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가 아닌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 사람이 떠난 이후에도, 나는 그 사랑의 기억으로 살아가며, 그 기억은 내 일부가 된다.

이별 이후의 시간은, 사랑을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나를 다시 바라보며 성장한다. 사랑이 떠났기에 우리는 나 자신을 재정의할 기회를 얻는다. 사랑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내 모습, 사랑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감정의 깊이를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동시에 부드러워진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그 사랑을 미화하기도 하고, 가끔은 무덤덤하게 떠올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사랑이 떠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사랑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사랑은 끝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시작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답게 변한다.


사랑은 떠난 후에도 나를 만든다.

마치 불꽃처럼, 한순간 타올랐다가 사라진 것 같지만, 그 불꽃이 남긴 온기는 몸과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우리는 사랑으로 상처받고, 사랑으로 치유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진짜 나를 만난다. 그래서 사랑은 전혀 헛되지 않다. 그것은 떠난 이후에도 우리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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