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이름으로 휘두른 몽둥이
완도의 바람은 싸늘했지만
봉강정 안은 아직 따뜻했다.
강두석은 마루에 앉아 “근로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이 박살 나듯 열렸다.
“이 자리에 빨갱이 있다!”
대한청년단 완도 분회 소속이라 밝힌
청년 셋이 쳐들어왔다.
완장을 찬 손엔 곤봉,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
칠판이 깨지고,
책상 다리가 부러졌다.
학생 하나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두석은 분노를 삼켰다.
그저 물었다.
“누가 너희에게 이곳을 빨갱이라 했나?”
그들은 말했다.
“너 같은 자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나라를 더럽힌다.
인민공화국을 꿈꾸냐? 서울에선 너 같은 선생들,
다 자살했단다.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며칠 뒤, 밤례가 숨겨온 대한청년단 내부 문건이 공개되었다.
“진보 계열 학교 교사 및 좌익 계열 출신 교사 명단 작성 지시.
향후, 민심 교란 요소로 분류된 인물은 경찰과 공조하여 처벌할 것.”
그 명단의 첫줄엔
“강두석 해방 전 공산주의자와 접촉, 민족주의적 경향 있음”
이 적혀 있었다.
밤례는 말없이 종이를 찢었다.
“당신은 붉은 것도, 푸른 것도 아닌 사람인데...
그들은 아무 색도 이해하지 않아.”
동네 주민들도 술렁였다.
“대한청년단이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들 다 없앤다더니… 진짜야?”
“두석 선생이 공산당이래… 미쳤나?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인데.”
“쌀값 오를 때도 입 딱 다물던 애들이, 이젠 칼자루 쥔 듯하네…”
두석은 차라리 조용히 접을까 했지만,
아이들 눈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밤, 마을 벽에 두석이 쓴 민의의 소리가 붙었다.
『민의의 소리』
“우리는 누구를 믿는가”
“정의란 이름의 곤봉을 든 자가,
소리 없는 이웃의 집을 부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잃었으나, 인간의 품격까지 잃을 권리는 없습니다.
누가 진짜 애국자인가요?
조국의 흙을 빼앗긴 자?
아니면, 조국의 이름으로 흙을 짓밟는 자?
민족의 이름으로 또 다른 분단을 낳지 마십시오.”
밤례는 글을 붙이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날 밤 누군가 민의의 소리 벽보에
검은 글씨로 이렇게 썼다.
“다음은 너희 차례다.”
#작가의 말
대한청년단은 단지 이념에 충실한 청년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 폭력의 민간 도구,
복수심과 공포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들
두석, 밤례, 그리고 언론, 진보적 교사와 학생들
진실과 삶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벽보를 붙이고, 칠판 앞에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