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담보로 산 자의 독백
아직 새벽이었다.
지서 마당 한켠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그 아래 웅크린 순형은 담배를 붙였다가 껐다.
불씨 하나 붙이는 게,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그는 생각했다.
해방이 오면, 세상은 달라질 줄 알았다.
일본 경찰의 곤봉 대신, 양심으로 다스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해방은 그에게 총과 붉은 깃발, 그리고 무수한 도장을 던져주었다.
일제강점기때였다.
독립운동 하던 김상진을 붙잡으러 다녔다.
그때 순형은 손이 떨렸다.
애국지사를 잡으면 내가 살고, 출세가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조국이 있긴 한 건가…”
순형은 두석을 떠올렸다.
그는 성공 대신 분필을 쥔 사람이었다.
총 대신 교과서를 들고
밭두렁과 폐허 서당을 오갔다.
순형은 두석이 두려웠다.
한때 같은 학교 마루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떠드는 걸 말려주던 두석이었다.
“너는 왜 경찰이 되려 하냐?”
그 말에 순형은 대답하지 못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떵떵거리며 살아 남아야 했다.
화려하게 살아 남아야 했다
순형은 두석의 ‘러시아 시집’을 떠올렸다.
그것만 있으면 충분했다.
좌익이라 몰아붙일 구실.
누가 그 시집 속에 담긴 러시아 혁명시를 해석해주겠는가.
누구도 그 속에 담긴 사람 사는 노래는 보지 않았다.
필요한 건, 죄목이었다.
두석은 순형이 달라는 전향서를 끝내 써주지 않았다.
그 한 줄만 쓰면 살았을 것이다.
그는 살기 위해 무릎을 꿇으라 했지만
두석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순형은 알아버렸다.
진짜 무서운 건 이념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다.
어떻게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
포승줄에 묶여 마당으로 끌려 나오는 두석의 등을 바라봤다.
비틀린 어깨, 꺼져버린 눈가.
그런데도 이상했다.
죽음 앞에선 두석이 더 살아있었다.
순형은 눈꺼풀을 떨었다.
조금 전, 영재가 마당 한켠에서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 나도 이제 읍내 유지가 됐소.
사람 하나 보내고 사람 열을 살린 셈이오.’
순형은 고개를 돌려 침을 뱉었다.
그 침조차 땅에 스미지 않았다.
피처럼 말라붙었다.
“두석아…
나는 너 대신 살아남았다.
너 대신 숨 쉬고, 너 대신 도장을 찍고, 너 대신 욕을 먹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자신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작가의 말
살아남았다고 모두 산 것은 아니었다.
그 시대는 수많은 순형을 만들었다.
도장 하나, 서류 한 장, 전향서 한 줄로 친구를 버리고
친구의 신념을 사형선고로 바꿔버린 사람들.
그들이 배신한 것은 친구만이 아니었다.
자기 영혼이었다.
두석은 죽음으로 시대를 이겼고,
순형은 생존으로 양심을 파산냈다.
그 파산의 기록이,
곧 우리 시대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