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가지에도 노란 개나리꽃은 피어난다
수리넘 산자락.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두건이 바람결에 너울댄다.
금산 처가에서 붙잡힌 지 사흘.
두석의 손과 어깨에 포승줄이 감기자,
지서 유치장 문이 열리고 그가 밖으로 끌려 나왔다.
울포 부두.
이른 새벽, 수많은 사람들의 숨죽인 눈동자가 모였다.
두석은 무심한 경찰들 사이에서 작게 청했다.
“가족들과 주민들에게 마지막 인사할 시간을 주시오.”
단칼같이 거절될 말이었다.
하지만 경찰 하나가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이 그곳에 있었다.
“고맙소.”
두석은 혼잣말처럼 작게 내뱉었다.
그는 한 걸음, 두 걸음…
사람들이 모여 선 부두 끝으로 다가갔다.
바다 바람에 소나무 향이 실려왔다.
두석은 군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세상이 혼란하고,
아직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해
법과 원칙이 죽어버린 이 상황이
참담하고 비통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실낱같은 희망 하나 붙들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형제,
이 나라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단 한 번도 내 양심을 팔지 않았습니다.
내가 신념과 정의를 꺾고,
비겁한 삶을 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그 꿈이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나는 부끄러운 생명을 붙들기보단,
이 자리에 나의 죽음을 바치겠습니다.”
울포 선창가에 울음소리가 번져갔다.
“선생님! 선생님!”
군중들이 흐느끼며 절규했다.
“저분을 죽여선 안 됩니다!”
“죽일 사람이 따로 있지, 강두석 선생님은 아닙니다!”
두석은 다시 말했다.
“여러분.
하늘이 정한 제 명이 여기까지라면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더 분한 것은
정의가 사라지고 간교한 자들이
이 나라를 팔아먹으며 기세등등한 세상입니다.
사람이 존중받고,
동족이 동족의 목숨을 거두지 않는 세상.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었던 이 땅의 내일입니다.
이념이라는 악마 같은 깃발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나는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일본의 앞잡이들이,
그들에게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독립운동가를 욕보이고 죽음으로 내모는 꼴.
나는 결코 함께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목숨을 부끄럼 없이 바칩니다.
나의 죽음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마른 가지 같아 보이는 저 나무에도
때가 오면, 노란 개나리가 피어
이 세상을 다시 덮을 것입니다.”
두석은 부두 끝 바닷바람 속에서
마지막으로 외쳤다.
“내 죽음이 끝이 아니리라!
마른 땅 속에서도,
노란 개나리는 다시 피어난다!”
총성이 울렸다.
그의 몸이 물결치는 군중의 울음 속으로 스러졌다.
그 순간, 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바다와 하늘 사이, 노란 빛이 번졌다.
1949년 봄.
봉강정 언덕 묘비 앞에
노란 개나리가 다시 피었다.
밤례는 그 앞에 시집을 펴 놓았다.
“죽음아, 올 테면 와라. 나는 나의 길을 갔노라.”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며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구절을 들려주었다.
“영혼의 불꽃은 재가 되어도, 그 속에선 새로운 싹이 튼다.”
#작가의 말
강두석의 최후는 순국이 아니라,
또 하나의 씨앗입니다.
이 땅에 다시 피어날 노란 개나리는
권력의 총알에도 꺾이지 않을
사람다운 사람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는 무너져버린 ‘해방’의 이름 아래,
또 하나의 폭력과 분열에 맞섰습니다.
그의 이름은 묻혔을지라도,
그의 신념은 이 봄에도
누군가의 가슴에 노란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가슴엔
무엇이 피어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