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1

붉은 깃발 아래, 바람은 아직 차갑다

by 강순흠



1947년 5월 1일, 완도 신지 가리더 모래사장.
해가 뜨기도 전에 사람들은 물때를 맞춰 바닷가로 모여들었다.
쌀독이 비어버린 집, 논과 밭을 내주고도 빚잔치만 남은 집, 일제 때 땅을 빼앗겼는데 해방이 되어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
모두들 제 몫의 봄을 찾으러 나왔다.
조선은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일본 때 순사들이 경찰복을 갈아입고 있었다.
쌀은 창고에 쌓여도 배급은 권력의 이름으로 끊겼고, 남은 건 고리대금의 독촉장뿐이었다.
마을마다 굶주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바닷바람처럼 스며들었다.
그날 모래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누군가는 깃발을 세웠고, 누군가는 삐라를 돌렸다.
누군가는 땀과 피로 쟁기질한 땅을 되찾겠다고, 누군가는 배급 창고의 자물쇠를 부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 사람들 한가운데 두석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편에, 키가 훌쩍 자란 아들 군수가 함께 서 있었다.
군수, 이젠 아버지 키와 맞먹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 오늘도 무사할까요.”
군수의 목소리가 파도에 흩어졌다.
두석은 그저 바다를 바라보다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물러설 길이 없다. 배곯는 건 그만두자고 모인 거니까.”
군중들은 바닷가에 둘러서서 구호를 외쳤다.
‘쌀을 달라!’
‘땅을 돌려달라!’
‘아이들을 살려내라!’
멀찍이 모래언덕 위엔 경찰이 곤봉을 들고 서 있었다.
권총을 찬 순사 하나가 확성기를 부여잡았다.
“불법 집회다! 당장 해산하라! 불응 시 발포한다!”
잠깐의 정적.
두석은 군수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군수야, 겁먹지 마라. 오늘 네 두 눈에 똑똑히 새겨둬라. 우리가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군중들 사이엔 이미 겁과 결기가 엉켜 있었다.
누군가 돌멩이를 주웠고, 누군가는 곤봉을 든 경찰과 눈을 맞췄다.
첫 돌멩이가 날아갔다.
경찰의 발치에 떨어져 모래먼지가 일었다.
확성기가 금속성 울림으로 비명을 질렀다.
“발포!”
첫 총성이 모래사장에 울려 퍼졌다.
이양동의 가슴께가 벌겋게 물들며 쓰러졌다.
비명소리, 달아나는 발자국, 끌려가는 사람들의 고함이 한데 얽혔다.
두석은 군수의 팔을 잡아당겼다.
“뒤쪽으로 빠진다. 붙잡히면 끝장이다.”
군수의 눈은 커져 있었지만, 울지 않았다.
바닷바람에 깃발이 젖었다.
두석과 군수는 뒤엉킨 사람들 사이로 몸을 틀었다.
누군가는 쓰러지고, 누군가는 끌려갔다.
갈대숲 너머로 파도 소리가 가만히 밀려왔다.
그 소리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고요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왜 이렇게 모였을까.
1947년 5월, 해방된 줄 알았던 조선의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모인 이들은, 왜 총을 맞아 쓰러져야 했을까.
배고픔은 곧 정의였다. 땅을 되찾는 건 곧 존엄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그 목마름과 존엄을, ‘불온’이라 부르고 곤봉과 총으로 눌러 앉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쩔 수 없다고 부정하며 살고 있는가.”
정의는 늘 낡은 말 같지만, 잊히면 가장 무서운 말이다.
다시 핀 동백은 누군가 피 흘려 지켜낸 이름 없는 진실을 꺼내, 이 시대의 우리에게 물으려 한다.
당신은, 당신의 모래사장에서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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