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3

산 너머로 부는 총성

by 강순흠



집회가 끝나고, 모래사장이 피와 모래먼지가 되어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은 모여 울지 못했다.
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산으로 숨었다.
산너머 뒷산 골짜기 깊은 솔숲.
해 질 녘만 되면 모닥불도 못 피운 채, 사람들은 젖은 풀잎에 몸을 기댔다.
군경은 마을만 뒤지지 않았다.
총끝은 산으로 향했다.
“이놈들 다 잡아라!
밤이든 낮이든 굴속이든, 잡아서 내려와야 된다!”
경찰들은 낮에는 논두렁에 숨어들고, 밤에는 갈대밭을 비집고 올랐다.
어린 조카가 밥을 싸서 몰래 넘기다 붙잡혔다.
누군가는 밤중에 발각돼 그대로 총을 맞았다.
산 위 굴속에는 스무 살 갓 넘긴 청년 상규가 있었다.
낮 집회에서 돌을 던진 주동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도 고집스러운 농사꾼으로 통했다.
긴 고무다라이에 찬밥과 묵은지, 그리고 삶은 고등어 한 토막을 담았다.
밤이면 아버지는 해진 바지자락을 걷어붙이고 산자락을 올랐다.
달빛도 피하며, 바스락거리는 풀잎에도 가슴을 졸였다.
“아버지!”
굴 입구에서 상규가 달려 나와 다라이를 받아 안았다.
두 사람은 눈으로만 웃었다.
그 밤, 달은 맑았다.
그 맑음이 화근이었다.
갈대숲 아래서 대기하던 순사 셋이 뒤를 밟았다.
상규는 밥 다라를 품에 안고 굴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돌아가려다 산비탈 밑에서 경찰들과 맞닥뜨렸다.
“너, 방금 뭐했어?”
등에 달빛이 내렸다.
아버지의 바짓단이 풀잎에 젖어 있었다.
“아이한테 밥 좀… 굶어 죽는다, 굶어 죽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곤봉이 머리를 내리쳤다.
아버지는 풀밭에 무릎을 꿇었다.
“주동자 은신시키는 자는 빨갱이다. 산으로 들인 놈은 다 빨갱이다.”
그 말 끝에, 총성이 짧게 터졌다.
굴속 상규는 그 소리를 들었다.
입 안의 찬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눈꺼풀에 달빛이 깃들었다.
숨이 뜨겁게 올라왔다.
“아버지… 아버지…”
산자락에 밤바람이 불었다.
그 밤, 총성이 바람보다 길게 메아리쳤다.


#작가의 말
해방은 왔지만, 쌀독은 비었다.
미군정은 양곡 자유화를 외쳤다.
그러나 자유란 이름으로 부자와 권력자들은 쌀을 쌓아두었고,
배급은 불공정이었다.
쌀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그해 봄, 밥 한 술이 목숨 값이 되었다.
배고픈 아들에게 밥을 넘기려다 총에 쓰러진 아버지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를 ‘빨갱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굶주림을 잊으려 침묵으로 등을 돌렸다.
우리는 묻는다.
자유는 누구의 것이었나.
권력은 누구의 배를 불렸나.
그리고 오늘,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은 누구의 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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