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그 아이의 이름처럼
1947년, 봄이 막 피어나는 광주.
강군수는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어린 듯하지만 전쟁과 해방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들의 눈빛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강두석은 해방 전부터 민족 계몽에 헌신한 인물로, ‘봉강정 선생’이라는 이름은 지역에서는 몰라주는 이가 없었다. 군수에게 아버지는 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크고 짙은 그림자.
“군수야, 이번 합창 발표는 네가 좀 맡아봐야 쓰겄다. 좌우합작 논의로 뒤숭숭한 판이니, 너처럼 말 맺는 학생이 중심을 잡아줘야지.”
담임인 오상근 교사의 말에 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는 매년 5월이면 ‘자치 발표회’를 열었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분위기가 달랐다. 좌우로 갈라진 사회 분위기는 학교 안까지 깊이 침투해 있었고, 발표회 주제를 둘러싸고도 ‘민주주의’니 ‘반공’이니 목소리들이 충돌했다.
군수는 다툼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글을 발표하고,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그 모든 것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다.
그날 오후, 발표회 대본을 찾아 도서관에 들른 군수는 오래된 신문철이 쌓인 서가 한 귀퉁이에서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잠깐만요, 그 책 먼저 봐도 될까요? 정지용 시집 말이에요.”
군수는 돌아섰다. 흰 블라우스 위에 얹은 회색 조끼, 짧게 자른 단발머리, 또렷한 눈동자를 지닌 여학생이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2학년쯤 되었을까.
“어... 네. 여기요.”
책을 내미는 손이 조금 떨렸다. 여자애 앞에서 이렇게 당황하긴 처음이었다.
“고마워요. 나 소희예요. 2학년.”
그녀는 이름을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 순간, 군수의 가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튀었다.
도서관에서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발표회를 준비하며 군수와 소희는 자주 마주쳤다. 노래 연습을 함께 했고, 대본을 같이 수정했고, 빈 교실에서 밤늦도록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소희는 자주 시를 읊었고, 군수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동백은, 사실 봄에 피는 게 아니에요. 겨울을 뚫고 피어요. 그래서 더 예쁘죠.”
어느 날 소희가 그렇게 말했을 때, 군수는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잠시 멈춰 섰다. 다시 핀 동백. 혹독한 시대를 딛고 피어난, 그 사랑도 그 꽃처럼 견디고 피는 것일까.
봄은 그렇게, 광주의 하늘 아래로 조용히 번져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1947년, 해방된 조국의 땅 위에 아직 진정한 자유는 없었습니다. 좌우 이념의 격돌, 미군정의 모순, 친일파의 부활, 분단의 먹구름이 서서히 드리워지던 시절. 그러나 그런 혼돈의 시기에도 누군가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누군가는 도서관 책상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상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소년이 겪은 격동의 시대 속 설레는 첫사랑의 기억입니다. 분단의 그림자와 좌우합작의 소용돌이, 교내 발표회를 준비하며 마주친 한 여학생. 책 속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작은 희망이자 치유의 역사였습니다.
이념이 인간을 가르고, 사상이 총칼이 되던 시대에도 만남은 시작됩니다. 아무리 찬 바람 불어와도 동백은 다시 피듯이 말입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그 시절을 살았던 어른들의 고백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의 거울로 다가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