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6

그날 이후, 나의 이름은 떨렸네

by 강순흠


광주 도심은 봄빛에 물들고 있었으나, 어디선가 불안한 기류가 번지고 있었다. 1947년 3월, 제주 3·1절 발포 사건의 파문은 육지로 번지고, 해방공간의 좌우 갈등은 날로 첨예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군수에게 세상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군수는 그날 이후 무언가에 홀린 듯 자주 도서관을 서성였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김소희’라는 이름 석 자만이 노트 한 귀퉁이에 연필로 흐릿하게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학교 발표회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날의 박수, 무대 위에 서서 읊었던 자신의 글, 그리고 객석 뒤편에서 조용히 눈을 맞췄던 그녀의 미소가 자꾸만 떠올랐다. 친구들은 경찰이 학생운동을 탄압하고 있다는 소식에 분개했지만, 군수의 가슴을 가장 크게 흔든 건 단 하나였다.
“김소희….”
“뭐라고?” 옆자리에서 책을 읽던 병식이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병식은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혹시 너도 여학생한테 빠졌냐? 요즘 너 표정이 꼭 그 꼴이야.”
“그런 거 아냐.” 군수는 대꾸했지만, 얼굴이 빨개졌다.
하교길, 전당포 앞 계단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손짓했다. “야, 좌우합작 시위 준비하러 간다! 같이 가자.”
하지만 군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집에 좀 들러야겠어.”
“요즘 너 왜 그래? 전에는 제일 먼저 앞장서던 녀석이!”
군수는 대답 대신 길모퉁이로 몸을 돌렸다. 마음속에 어떤 균열이 일고 있었다.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던 소년은 지금 한 여학생의 눈빛에 마음을 빼앗겨, 그날의 의미를 혼자 되새기고 있었다.
그날, 군수의 발표 제목은 ‘우리는 다시 서야 합니다’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해방은 우리에게 자유를 줬지만, 동시에 숙제를 남겼습니다. 일본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텅 빈 질서와 서로를 향한 불신 뿐입니다. 좌우는 서로를 미워하며 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입니다. 새로운 조선을 세울 세대입니다. 증오보다 질문을, 분열보다 책임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박수는 이어졌지만, 군수는 자신이 던진 말이 무겁게 돌아올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박수 속에서 조용히 웃던 소녀의 얼굴이 그의 모든 예감을 덮었다.
며칠 뒤, 그 소녀를 다시 마주한 것은 우연이었다.
오후 햇살이 스며드는 충장로 헌책방 골목에서였다. 그녀는 얇은 시집 한 권을 고르고 있었다. “어... 소희?” 군수가 말을 건넸다.
소녀는 놀란 듯 돌아보았다가, 이내 웃음을 보였다.

둘은 마주 앉아 책을 펴고도, 종종 눈을 마주쳤다. 군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여운형의 연설문을 옮겨적고 있었다.
“그거, 좌우합작 이야기죠?”
“응. 요즘 학교 안팎에서 많이 이야기돼.”
“아버진 반대하세요. 좌우가 어울릴 수 없다고….”
그녀의 말끝엔 조심스러운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조선은 해방되었지만, 소년과 소녀는 여전히 일제 잔재와 신탁통치 문제, 그리고 분열된 민심 사이에 놓여 있었다.
며칠 후, 소희는 군수에게 자그마한 노트를 내밀었다.
“이거, 읽어줄래요?”
그 안엔 그녀가 쓴 시가 담겨 있었다.

‘모래 위에 선 동백 한 송이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불꽃처럼 피어있네…’

군수는 마음이 저릿해졌다.
“네가 쓴 거야?”
“응, 언젠가 동백꽃처럼 피고 싶었거든. 부서지지 않고, 붉게.”
군수는 아무 말 없이 노트를 가슴에 안았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도서관 앞 개울가 벤치에서 자주 마주 앉았다. 사탕 하나를 나눠먹고, 손끝이 스치면 웃었다. 그 풋풋한 마음은 이름조차 부르지 못할 감정이었고, 오히려 그래서 더 진했다.
하지만 광주는 점점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학교 앞엔 ‘좌우합작 반대’라는 대자보가 붙고, 어른들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군수는 그 어지러움 속에서도 소희의 시를 노트에 베껴 적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이겨내고 있었다.
‘나는 너를, 이 시절을, 오래 기억할 거야.
동백처럼, 다시 피는 그날까지.’
그 시절, 동백은 그렇게 둘 사이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그날의 대화는 군수에게 밤잠을 앗아갔다. 시는 처음 읽는 것처럼 달콤했고, 소녀의 목소리는 더 많은 질문을 낳게 했다.
그날 밤, 군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창밖에서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노트에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그날 이후, 나의 이름은 떨렸네.
바람보다 먼저 귀 기울이던 너의 눈동자 때문이었네.”
소년의 첫사랑은 그렇게, 광주의 봄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말
1947년은 참으로 복잡한 해였습니다. 제주 3·1 발포 사건, 좌우합작 운동의 분열, 미군정과 경찰의 폭력, 그리고 민중의 혼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피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격랑을 기록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떨림을 간직합니다.
‘소년 강군수’의 설레는 첫사랑을 통해 시대를 통과하는 감정의 힘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이 조심스러운 떨림인지도 모릅니다.
“동백은 시절의 은유입니다.”
해방이 곧 자유와 평화를 의미하지 않던 시대, 청춘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통해 봄을 발견했습니다. 강군수와 김소희의 이야기는 단지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감정과 꺾이려는 이상 사이의 투쟁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강연보다도, 소희의 시 한 구절이 군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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