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사람들
해는 동녘 바다 위로 붉게 솟아올랐다.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마을 골목을 돌아 논두렁에 핀 개나리꽃을 흔들었다.
1948년 5월, 금당도 사람들은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투표.
나라를 위해 누군가를 뽑는다는 것, 그것이 이 섬에도 현실로 다가왔다.
며칠 전 장터에서 들은 노인의 말이 귓가를 떠돌았다.
“투표라는 게, 도장 한 번 찍는다고 세상이 달라지겄냐?”
그러나 또 다른 이는 말했다.
“우리가 고른 이들이 나라를 만든다. 이게 진짜 조선의 시작 아니겄냐.”
군수는 사흘 전 읍내를 다녀왔다. 선거 유세가 한창이었다.
확성기에서는 귀청이 찢길 듯한 구호가 흘러나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
“공산세력을 타도하자!”
“친일파는 몰아내고 조선을 지켜내자!”
아이들은 유세차가 지나가면 겁에 질려 울곤 했다. 교회 앞 공터에서는 후보가 직접 연단에 올라 외쳤다.
“…해방된 이 나라의 주인은 여러분입니다! 그러나 북쪽에선 선거를 거부하고 있소. 이대로 가면 나라가 갈라집니다. 우리는 새로운 민주 공화국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으나, 많은 이들의 얼굴에는 무표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떤 이는 속삭였다.
“그래봤자 미군정이 짜놓은 판 아니여?”
마을 풍경도 달라졌다. 젊은이들은 이장집에 모여 열띤 논쟁을 벌였다.
“남쪽만의 선거라면, 이건 분단의 시작이여. 가짜 독립일 뿐이야.”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일본 같은 자들이 위에 앉을지 몰라. 우린 나라를 가져야지.”
밤마다 서로 다른 이념이 부딪혔고, 낯선 이들이 골목을 기웃거렸다. 정보과 형사, 후보 측 심부름꾼이 뒤섞여 다녔다.
군수는 벽보를 바라보았다.
• “박철 후보 ― 반공과 복국의 지도자, 청년 여러분의 선택을 바랍니다!”
• “김장열 후보 ― 농민의 벗, 참된 공정의 길을 열겠습니다!”
• “황학봉 후보 ― 친일파를 몰아내고, 청년이 앞장서는 새 조선을 세우자!”
선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과 신념, 그리고 분열을 드러내는 무대였다.
그날 밤, 군수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나라가 생긴다네요.”
밤례는 빙그레 웃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라야 생길지 몰라도, 사람들 마음은 더 멀어지는 것 같구나.”
금당도의 작은 학교에 임시 투표소가 마련되었다.
바람은 잔잔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더뎠다.
처음 겪는 긴장감. 도장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누군가는 누가 더 말을 잘하느냐로, 누군가는 누가 덜 두렵냐로 표를 정했다. 그날, 수많은 도장이 종이 위에 찍혔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소리 없는 외침.
그러나 그 외침 너머에는 이미 산속으로 숨어든 가족, ‘부역자’ 혐의로 잡혀간 이웃, 목숨을 잃은 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선거권은 만 21세,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졌다. 처음엔 25세와 30세로 제한하려 했으나, 미군정의 개입으로 겨우 낮아진 것이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청년층에는 좌익 성향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마을 어른들이 군수를 불러 앉혔다.
“이놈아, 너 학교 다녀왔잖냐. 선거가 도대체 뭔 일이냐?”
“애비 이름도 못 쓰는 사람들한테 무슨 투표라냐.”
“이게 자유여? 그냥 눈치 보는 거 아니겄냐?”
군수는 고개를 떨궜다. 서울에서는 친일 경찰이나 관료들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금당도에선 면서기 출신이 후보로 나섰는데, 해방 전엔 일제 헌병 보조원, 해방 후엔 미군정 협력자로 돌변한 자였다.
사람들은 투표소 앞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냐?”
“이게 무슨 나라꼴이냐… 해방이 오긴 온 거냐.”
하지만 감히 크게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 순간 ‘좌익 혐의’로 끌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수는 그날, 민주주의의 꽃이 피리라 믿고 싶었으나 눈앞에 보인 것은 검붉은 피와 두려움에 잠긴 침묵뿐이었다.
그는 다짐했다.
언젠가, 정말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이름을 부르고, 눈치 보지 않고 투표할 수 있는 세상.
기표소 안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보리라.
#작가의 말
1948년 5월 10일, 한국사 최초의 보통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민주주의의 출발선만은 아니었다. 분단의 서막이 열리고, 신념이 충돌하며, 해방의 기쁨은 혼란과 공포 속에 퇴색했다.
금당도의 사람들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조부모, 이웃 어른, 돌아오지 못한 누군가일 수 있다.
투표는 축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 속에서 강요된 선택이었고, 동시에 진정한 자유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었다.
오늘 우리가 기표소에서 자유롭게 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 시대의 고통과 침묵 위에 세워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