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16

붉은 낙인

by 강순흠


1948년 5.10 총선 이후, 제주는 결국 선거를 치르지 못한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중앙 정부는 이를 두고 공산 세력의 방해라며 제주를 공산폭동 지역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들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병력이 제주섬 전체를 수색했고, 마을 하나가 통째로 불탔다.
어떤 이들은 산으로 도망쳤고,
어떤 이는 "산 사람을 보았다고" 고문당했다.
마을 어귀에선 노인과 아이가 총검에 찔려 숨졌고, 그 집 지붕 아래엔 미처 먹지 못한 따뜻한 밥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진압은 곧 국가의 의무’라던 상부의 명령은 점점 거대한 의심으로 다가왔다.
"정말 이들이 공산주의자인가?"
"혹여, 선거를 거부한 대가로 벌을 내리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이 마음에 피처럼 흐르던 10월,
여수의 14연대에 ‘제주 진압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우리는 민간인을 죽이러 가지 않겠다”며 일부 병사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무고한 양민을 죽일 수 없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반역자의 목소리’가 되었다.
이른바 여수·순천 10·19 사건.
그날의 여수는 피로 물들었고,
그 여파는 다시 제주로 향했다.
정부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빨갱이다. 몰살하라.”


며칠 뒤, 중앙에서 내려온 문서가 내 손에 쥐어졌다.
표지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여수·순천 반란 진압에 협조 바람.
반란군 연계자 색출 및 보고.
지역 내 좌익 동향 수시 파악 요망.
진압 병력 파견 준비 중.
완도, 고흥, 보성, 해남 일대 좌익 세력 동조 가능성 우려.”

"이제는 우리도 의심받고 있는 것 아닐까?"
총을 든 자와, 총을 들라는 명령을 받은 자의 차이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전남 전체가 검문검색에 휘말리고,
군은 곧장 다시 제주로 향했다.
이번에는 훨씬 더 거세게, 훨씬 더 잔인하게.

밤이 되면 마을마다 남자들이 끌려갔다.
“너는 빨치산과 한통속이냐?”
“여수 반란군과 연락했느냐?”
이름도 모르는 마을이 하루아침에 불타 사라지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시신 곁에 며칠을 굶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 이름으로 동족을 죽이는 것,
그것이 정당한가?

며칠 후, 군수는 광주에 사는 옛 스승에게서 편지를 한 장 받았다.
잉크가 번진 그 편지엔 짧은 문장만 적혀 있었다.
“남쪽에서 피바람이 몰려옵니다.
우리는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은 전쟁을 살고 있습니다.”

그 문장을 반복해서 읽던 군수는 문득 책상 서랍을 열었다.
거기엔, 아버지 두석이 기록한 낡은 필통과 조그만 수첩이 있었다.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산에 숨었습니까.
도피자입니까, 아니면 시대가 만든 죄인입니까…’
우리가 꿈꾼 건 다른 세상도, 다른 국기도 아닙니다.
단지 굶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었을 뿐입니다.”
군수는 속으로 읊조렸다.
왜, 그 단순한 바람조차 이토록 위험한 것이 되었을까.

그날 밤, 군수는 꿈을 꾸었다.
개나리꽃이 피어 있던 산골짜기.
그리고 핏자국이 선명한 흰 광목옷.
그 앞에 아버지 두석이 서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군수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수의 반란은 곧, 전국적인 색출의 빌미가 되었다.
며칠 뒤, 중앙에서 내려온 ‘특별진압계획안’이 완도에도 도착했다.
서장 김두천은 단호했다.
“군사반란을 틈타 좌익 잔당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선제타격을 해야 해.
이미 수색조는 금일과 고금도, 신지, 약산도에 배치 중이야.”
군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아버지 두석도, 이미 수배 중이었다.
섬사람들 속에 섞인 좌익 계열 청년들, 통일정부를 외치던 사람들, 친일청산을 부르짖던 사람들, 해방 직후 인민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던 어르신들…
그들에게 들이닥칠 그림자는 더욱 뚜렷하고, 더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누군가 은밀히 군수를 찾아왔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명단이었다.
수십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 하나 ‘강두석’.
“그분들 중 일부는 산으로 도망쳤답니다.
특히 약산면 쪽엔 지금 군경 수색대가 들어갔고…
현장 지휘관들은 ‘사살 우선’이란 말까지 흘립니다.”
군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해가 저물 무렵, 완도항엔 다시 군용선이 닻을 내렸다.
중앙정부 직속 특별경비대가 섬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내일, 약산면 골짜기에서 수색이 시작된다.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소.”

그날 밤, 군수는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광주에서 활동 중인 노정근선생님.
그는 정치와 언론계 사이에서 소외된 진실을 기록하려는 인물이었다.
“선생님, 여수의 총성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는 반역이라 부르지만,
저는 그것이 우리가 잊고 지낸 '인간의 외침'이라 믿습니다.”

바람은 이제 폭풍이 되려 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1948년 대한민국은 남북 분단이라는 큰 전환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국가란 이름으로 자행된 진압과 학살,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평범한 이들의 고통은 너무 쉽게 잊혔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여수·순천 10·19 사건은 단순한 폭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곡된 국가의 눈”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었고,
당시 많은 이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여수 14 연대는 제주 학살 명령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반란이 아닌, 양심의 고통스런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정권은 이를 공산폭동으로 규정했고,
그 여파는 완도 같은 외진 섬마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적’이란 누군가의 기준으로 정해지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침묵하고, 얼마나 빨리 등을 돌렸는가.
이 소설은, 그 침묵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기록은 권력의 것이고,
진실은 침묵 속에 묻히고 있다.’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산은 숨어 있었고,
섬은,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지금껏 외면해 왔던 진실을 조명해보려 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된다."
이 말처럼, 이야기의 힘이 진실을 지키는 작은 불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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