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19

“총성이 멈춘 자리”

by 강순흠


바다는 잠시 뒤척이다가 이내 고요해졌다.
하얀 겨울 햇살이 수리넘 바위 위로 스며들었지만, 그 빛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군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귀 속에 아직도 아버지의 마지막 외침이 울리고 있었다.
“거짓이 진실을 덮게 두지 마라…”
그 말이 가슴속에 못처럼 박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심장을 찔렀다.

밤례는 총성이 울린 순간 무릎을 꿇었다.
바위 위에 붉게 번지는 것을 보았을까, 아니면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을까,
그건 그녀 자신도 몰랐다.
순심은 엄마의 치맛자락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엄마… 아버지 어디 가…”
“… 하늘로 가셨다, 순심아.”
밤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단단해서, 군수는 더 무너질 것 같았다.
군수옆에서 현수도 아버지 두석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모여 있었다.
어디선가 “살려 달라!”고 외치던 목소리는 이미 사라졌다.
남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여자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고 기억했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침묵을 선택했다.
대한청년단원들이 시신을 거칠게 덮개로 가렸다.
“이놈은 반역자다. 이런 자는 다 이렇게 돼야 한다!”
그들의 외침은 바람에 흩어졌지만,
그 말 속에는 시대의 칼날이 서 있었다.

군수는 한 발, 또 한 발 앞으로 걸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미간은 고통이 아니라 결심으로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이 군수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수리넘 절벽 아래로 바닷물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군수는 아버지의 몸을 부드럽게 들려고 했으나,
두 명의 경찰이 앞을 막아섰다.
“이 시신, 허락 없이 가져갈 수 없다.”
“제 아버지입니다. 그냥 보내주십시오.”
“허락이라 했지? 지서에서 결재 받아와.”
그 말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규칙을 읊조리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군수는 알았다. 그것은 규칙이 아니라, 권력의 흉기였다.

밤례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군수보다 작고 왜소했지만, 그 순간엔 바위처럼 보였다.
“내 남편이다. 차라리 나를 쏴라.”
순간, 경찰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그 틈에 마을 사람 몇이 달려와 시신을 들어 올렸다.
비밀리에 준비해 둔 멍석에 둘러싼 뒤, 바닷길을 따라 서둘러 옮겼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대한청년단원 두 명이 묵묵히 따라왔다.
장례마저 ‘감시’ 아래 치러지는 세상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군경 초소가 설치되었다.
드나드는 사람은 이름과 얼굴을 기록당했다.
밤마다 순찰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놀다가도 고함 소리만 나면 움찔하며 숨었다.
장례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치러졌다.
눈물은 흘렸지만, 곡소리는 억눌렀다.
누군가의 이름이 또 명단에 오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군수는 아버지 무덤 앞에서 속으로 맹세했다.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군수는 알았다. 그 침묵이야말로 이 섬의 가장 깊은 절규라는 것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다짐은, 바다보다 깊고 겨울보다 차가웠다.



#작가의 말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폭력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그날, 수리넘 절벽 위에서 사라진 것은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라,
마을의 웃음과 사람들 사이의 신뢰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목격한 이들의 가슴속에는 통곡과 분노,
“이것을 기억하자”는 불씨가 남았습니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것입니다.

장례와 시신 수습조차 허락받아야 했던 시절,
사람들은 말 대신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국가권력의 폭력이 개인의 일상까지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어떻게 잠식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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