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20

“사상검증”

by 강순흠


아버지 장례가 끝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직 흙이 마르지도 않은 무덤 위로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 비 소리를 가르며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청년 전원, 당장 마을회관 앞으로 집합!
지체하면 불순분자로 간주한다!”
군수는 본능적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밤례는 그의 팔을 잡았다.
“가지 마라, 군수야. 네 이름도 이미 올라갔을지 모른다.”
“안 가면 더 위험해요, 어머니. 안 간 놈이 더 의심받아요.”

마을회관 앞에는 경찰, 대한청년단, 그리고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명부를 펼쳐놓고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호명된 사람은 앞으로 나와 ‘충성맹세’를 해야 했다.
대한민국과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반공에 대한 충성을.
앞에 나선 청년 전병수는 손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청년단장이 다가가 뺨을 내리쳤다.
“떨긴 왜 떨어! 혹시 저놈도 불순분자 아냐?”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군수의 차례가 되었다.
명부를 들여다보던 순경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 군수? 강두석의 아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진 빨갱이였지?”
군수는 숨을 삼켰다. 그 말은 부정해도, 긍정해도 덫이었다.
“아버진 농사꾼이었습니다.”
순경의 눈빛이 한동안 군수를 꿰뚫었다.
마치 거짓을 찾아내려는 사냥꾼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음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군수는 살았지만, 이미 표적이 된 것을 직감했다.

사상검증이 끝난 뒤, 몇몇 청년들은 회관 뒷마당으로 끌려갔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들의 집에서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바다로, 누군가는 산으로 사라졌다.
군수는 알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것을.
이제 마을과 섬 전체가 거대한 덫 속에 들어와 있었다.

#작가의 말
이 장면은 단순한 ‘사상검증’이 아니라,
공포로 민심을 통제하는 국가 권력의 일상적 작동을 보여줍니다.
특히 누군가의 가족관계만으로 ‘불순’의 낙인이 찍히는 현실은,
당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군수의 침묵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침묵은 곧 그 일생의 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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