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넘의 겨울”
1948년 겨울, 금당 앞바다는 잿빛이었다.
강두석은 이미 금당도에서 얼굴이 드러난 사람이었다.
여순사건 이후, 좌익계열로 찍힌 그는 경찰 명부 맨 위에 올라 있었다.
“두석선생님, 당분간 고향에 오지 마시오.
경찰이 수색에 미쳤어.
대한청년단 놈들도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오.”
그는 고흥 금산의 처가로 몸을 숨겼다.
낮에는 산속 움막에 숨어 지내고, 밤이 되면 살짝 내려와 처갓집에서 밥 한 그릇을 받아먹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겨울, 사람들의 눈과 귀는 바람보다 빨랐다.
12월 어느 밤, 처갓집 마당에 낯선 발자국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헌병처럼 무거운 군화 발소리.
대문이 거칠게 열리고, 군복 위에 경찰 완장을 찬 자들이 들이닥쳤다.
앞장선 이는 금당지서 순사 최만수였다.
그 뒤에는 대한청년단원 몇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강두석, 국가반란 혐의로 체포한다.”
“난 죄 없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법정에서 변명해라.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겠군.”
두석은 손이 뒤로 묶였고, 신발이 벗겨진 채 눈길 위로 끌려 나갔다.
금당지서에 도착한 두석은 사흘 동안 독방에 갇혔다.
심문이라기보다는, 밤마다 몽둥이와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네놈이 이 마을 사람들 선동했다며?
토지 무상분배, 공출 거부, 다 네 입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건… 사람답게 살자 한 말이었소.
그게 죄요?”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꺼지지 않았다.
강두석이 금당지서에 끌려온 지 하루째.
밤례는 부엌에서 소리 죽여 울면서 솥뚜껑을 열었다.
시래기국이 끓고 있었지만, 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순심아, 밥 한 그릇 더 담아라. 네 아버지가… 이 추위에 굶고 계실 거다.”
“엄마, 아버지… 언제 집에 와?”
“… 곧 오실 게다.”
딸 순심은 말을 잇지 못하고 밥그릇을 감싸 쥐었다.
밤례는 보자기에 밥과 국, 말린 솜팽이 생선하나 김치 한 종지를 싸서 품에 넣었다.
그리고 어린 딸을 데리고 지서로 향했다.
지서 마당엔 이미 눈이 희끗이 쌓여 있었다.
문 앞에는 대한청년단원 둘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밤례의 품을 흘겨보더니 비웃음을 던졌다.
“그놈,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괜히 밥 해다 날르면 뭐 하냐?”
“… 굶기면 죄짓는 거 아니요?”
밤례는 숨을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독방 창살 너머, 두석이 있었다.
얼굴에는 멍이 퍼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맑았다.
“군수아버지… 밥 좀 드셔요.”
“그래… 순심이도 왔구나.”
두석은 묶인 손목을 움직여 보았지만, 자유롭지 않았다.
밤례가 국그릇을 건네자, 그는 손 대신 입술로 국물 한 모금을 삼켰다.
“밤례… 너무 걱정 말어. 나는… 옳은 말을 했을 뿐이오.”
“옳은 말이… 왜 죄가 된답니까.”
“세상이 거꾸로 섰기 때문이오. 언젠간 바로 설 게다.
그때… 나 같은 놈이 희생됐다는 걸… 너랑 아이들이 기억해 주면 돼.”
순심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 집에 가자…”
“순심아, 사람은 말이다… 굶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네 아버진… 그걸 지키다 여기 있는 거다.”
밤례의 눈가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순간, 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면회 끝! 더 길면 안 돼.”
대한청년단원 둘이 밤례와 순심을 밀어냈다.
문이 닫히며, 두석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따라왔다.
“밤례야! 살아서 버텨! 꼭 버텨야 해!”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지서 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전날 밤, 누군가 “두석을 내일 수리넘으로 끌고 간다”는 말을 흘린 것이다.
아침부터 마을 어르신들과 부녀자들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두석이 죄 없다!”
“사람을 살려주시오, 경찰 양반!”
“아무 죄도 없이 죽이면… 하늘이 무너질 거요!”
하지만 최만수 순사는 냉정하게 말했다.
“국가가 필요 없다 한 자, 국가가 살려둘 이유도 없다.”
군수는 사람들 틈에서 이를 악물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두석은 양팔이 묶인 채, 군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였다.
“군수야… 사람은… 옳다고 믿는 걸 버리면 안 된다.
너는… 살아서… 꼭 기억해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토벌대원 둘이 두석을 잡아끌었다.
행렬은 금당 동쪽 바위 절벽, ‘수리넘’으로 향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두석은 절벽 끝에 서서,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떨리는 숨을 고르고, 마지막 목소리를 터뜨렸다.
“여기 모인 이웃들이여!
나는 죄 없다!
밥 굶는 사람 밥 먹이고, 땅 없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고 한 죄밖에 없다!
이 나라가… 그걸 죄라 부른다면,
그 죄… 기꺼이 내가 지고 간다!”
총부리가 일제히 겨눠졌다.
밤례가 앞으로 달려가려 하자 부녀자들이 붙잡았다.
군수는 돌처럼 굳은 채 눈을 감았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절벽 위 공기를 찢었다.
총성이 울리자 하늘은 울었고, 바다는 숨을 죽였다.
두석의 몸이 무너져 내렸고, 바닷바람이 시신 위로 눈발을 뿌렸다.
사람들의 울음과 절규가 뒤섞였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고, 누군가는 하늘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군수는 땅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버지… 전 이 날을, 이 장면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말
1948년 겨울, 금당도의 절벽 수리넘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곳은 한 인간이 “의(義)”를 지키다 죽음으로 내몰린 자리이자, 공동체가 역사와 마주한 비극의 무대였다.
강두석이 외친 말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었다.
굶주린 이웃에게 밥을 먹이고, 땅 없는 이에게 사람답게 살 권리를 말한 것, 그것이 죄라면 그는 그 죄를 기꺼이 짊어지고 갔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증언이 되었다.
역사는 때로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짓밟고, ‘국가’의 이름으로 양심을 학살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이 다시 진실을 불러내고, 억울한 죽음은 비로소 의로움의 증거가 된다.
수리넘의 겨울은 단지 한 집안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해방 후 혼란과 분단의 격랑 속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겪어야 했던 민족사의 겨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겨울은 묻는다.
우리는 옳음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견뎌낼 수 있는가?
다수가 침묵할 때, 소수의 진실을 외친 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역사의 추위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무덤 위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서 있다.
따라서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1948년 말, 전남 도서지역에서 당시 경찰과 대한청년단은 ‘국가보안’이라는 명목으로, 법적 절차 없이 주민을 사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단지 사상 의심이나 누군가의 밀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비극은 기록되지 않으면 또다시 잊힐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