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
경찰서장실 안은 숨이 막힐 만큼 고요했다.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백지가 유난히 넓게 보였다.
서장 책상 앞에 무릎 꿇은 남자는 손을 떨며 연필을 쥐고 있었다.
“다 적어. 보리 한 되 준 놈, 산속 사람 도와준 놈, 전부.”
서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더 큰 위협이 되었다.
남자의 이마에 맺힌 땀이 백지 위로 똑, 떨어졌다.
연필 끝이 종이를 할퀴었다.
연필 긁는 소리가 서늘하게 방을 가르며 이어졌다.
이익주,
글자 속에,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삼암,
그가 함께 논을 갈고, 아이 돌잔치에 와서 술잔을 기울였던 사내였다.
신진용,
겨울마다 고구마를 나눠주던 늙은 부부였다.
전수남,
보리 주머니를 부모 몰래 건넨 소년
.......,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굵게 뚝 뚝 떨어졌다.
연필이 가끔 허공에 멈췄다가, 서장의 시선에 다시 움직였다.
그의 손목은 마치 낙엽처럼 부서질 듯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이름을 적는 순간, 종이 위에는 보이지 않는 핏자국이 번져갔다.
그날 밤, 가학리 마을 부두에 경비정이 멈춰 섰다.
경비정에서 쏟아져 내린 군인들과 경찰은 명단을 들고 움직였다.
대문이 거칠게 열리고,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한 집, 한 집 사람들을 끌어냈다.
울음과 고함, 아이들이 부르는 부모의 목소리가 뒤엉켰다.
달빛 아래, 묶인 주민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새벽녘, 가학리 뒷산.
이름이 불린 사람들은 무릎 꿇은 채 줄지어 있었다.
흙냄새와 피비린내가 함께 퍼졌다.
첫 번째 총성이 터졌다.
비명도 짧았다.
둘째, 셋째…
총성이 이어질수록 산새들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핏물이 서서히 흙을 적셨고, 풀잎마다 붉은 이슬이 맺혔다.
마을의 대다수 어른들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갓난아기와 노인, 그리고 허물어진 집들뿐이었다.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수습했다.
전동균이 김명석의 주머니를 열었다.
피에 젖은 보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게... 보리 한 되의 대가냐."
며칠 뒤, 금당지서 소각장에 비에 젖은 명단 한 장이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됐다.
거기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필체가 선명했다.
연필 자국 위로, 진한 빗물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저 종이 한 장이, 가학리 마을을 죽였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종이.
35개의 이름이 빗물에 흐려져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힌 이름
"이정산"– 명단을 작성한 자.
그는 그날 밤, 자신의 이름도 적어 넣었던 것이다.
"빗물에 이름은 지워져도, 피는 남는다."
#작가의 말
"이름은 기록되지 않아도, 땅은 기억합니다."
1949년 완도 금당에서 '보리 한 되 사건'으로 희생된 "이름들"을 되살리는 문학적 추모입니다.
"죄"라는 단어가 가장 가혹하게 적용된 시대,
보리를 나눈 손길이 "반역"이 되고,
이웃을 지키려는 마음이 "적 사살" 사유가 된 비극입니다.
"이름들"은 실제로 재판 기록 없이 처형당한 사례입니다.
"이정산"은 가해자이면서도 시대에 휩쓸린 피해자임을 이중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문학은 죽은 자를 위한 변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각성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보고서(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