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줄과 심문
금당도 지서 유치장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비가 새어드는 천장 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 탁 하고 부딪혔다.
김금석이는 무릎을 모은 채 웅크려 있었다.
등 뒤로 묶인 새끼줄은 이미 살을 파고 피가 굳어 있었다.
구석에는 김종오 마을반장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부은 듯 붉었고, 입술 한쪽이 찢어져 말없이 피를 삼켰다.
가끔 들려오는 신음 소리 속에, 멀리서 심문받는 다른 주민의 비명과 둔탁한 구타음이 섞여 들렸다.
“이놈들, 보리 준 놈들 맞지?”
심문실 안.
책상 위에는 군홧발에 짓이겨진 보릿자루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형사 하나가 그 보릿자루를 발로 차며 소리쳤다.
“이게 다 너희들이 산속 빨갱이 먹이려고 모은 거잖아!”
전수남이 벌떡 일어서려다, 등제 뒤에서 날아온 곤봉에 무너졌다.
형사는 피범벅이 된 얼굴을 붙잡고 고개를 숙인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네 아들이 보리 준 거 다 알아. 얘 불면 살려줄 수도 있어.”
그 순간, 옆방에서 날카로운 아이 울음이 들려왔다.
김금석은 심장이 움켜쥐어진 듯 숨이 막혔다.
경찰은 일부러 문을 열어놓고,
아이와 어머니가 새끼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리 한 되가 이렇게 무겁다.”
이틀 뒤, 그들은 트럭에 실려 목포형무소로 이송됐다.
그 후 그들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
지서 철창 안에서 신지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산속 사람들은 우리가 식량을 주지 않았다면 다 굶어 죽었을 거야.
…그럼 우린 뭐가 되는 거냐.”
이흥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형무소 마당 한켠, 까마귀가 낮게 울었다.
그 소리가 마치, 앞으로 닥칠 일들을 미리 알리는 듯했다.
습한 공기가 코를 찌르는 금당지서 유치장에는 곰팡이 냄새와 오래 묵은 피 비린내가 뒤섞여 숨이 막혔다.
철문이 덜컥 열리자, 붙잡혀 온 신갑두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등과 옆구리에는 전날 몽둥이에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옷은 피와 땀에 절어 무게가 느껴졌다.
“갑두! 아제가 왔다.”
경찰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창살 너머, 최금동과 동서지간인 김우덕이 갑두에게 줄 밥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갑두의 처참한 모습에 최금동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빛은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갑두의 죄가 뭐요! 보리 한 되가 그렇게 큰 죄요?"
최금동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울림은 깊었다. 최금동의 항의에
대답 대신, 경찰관이 그의 다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퍽! 뼈가 울리는 소리에 비명을 질렀다.
신갑두는 경찰관들의 폭력에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들아 나를 때려라!
"왜 죄없는 어른을 때리냐!"
김우덕이 달려들었으나, 두 경찰이 거칠게 밀쳐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가져온 밥그릇이 깨지며 보리밥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 흩어진 보리밥알 몇 개가 감방 안으로 굴러와, 신갑두의 발목에 멈췄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목이 메었다.
‘그저 살리려고 한 건데….’
다음 날 새벽, 달빛이 희미하게 깔린 산길.
마을주민 권용주는 멀리서 끌려가는 세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최금동, 김우덕, 그리고 신갑두.
그들의 손은 등 뒤로 거칠게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한 경찰이 웃으며 권총을 꺼냈다.
육산리 재에 다다르자
"여기서 끝내자."
순간, 최금동이 갑두를 돌아봤다.
“갑두야… 억울해도, 부끄럽진 말아라. 사람은 사람을 살리려 했을 때, 이미 옳은 길을 간 거다.”
탕!
첫 번째 총성이 터졌다.
최금동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며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했다.
탕!
두 번째 총알이 김우덕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는 마지막 힘으로 고개를 돌려 갑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무죄…야…."
그 말이 새벽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세 번째 총성이 울리자, 신갑두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땅바닥의 풀잎들이 피로 번졌다.
경찰에 항의한 금동과 우덕의 죄명은 "좌익 세력 도망 중 사살"로 적었다.
같은 날 밤, 지서의 다른 감방.
김명석과 박화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선 죽는다. 지금이 아니면 못 나가.”
그들은 창살을 구부리고, 피투성이 손으로 담장을 넘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총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탕!
김명석이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졌다.
박화두가 그를 부여안고 달리려는 순간, 두 번째 총알이 등을 관통했다.
그들의 숨은 차갑게 멈췄다.
다음 날 아침, 주민 전동균이 명석과 화두의 시신을 발견했다.
명석의 주머니에는 말라붙은 보리 한 줌이 있었다.
전동균은 그 보리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이제 이 산은 원한 품은 이제 귀신들이 산다….”
그 시각, 경찰서장실.
낯빛이 잿빛인 한 주민이 무릎 꿇고 있었다.
“다… 다 말하겠습니다. 보리 준 사람들… 여기 있습니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종이 위를 기어 다녔다.
이름 하나를 쓸 때마다, 종이 위에 보이지 않는 핏방울이 떨어지는 듯했다.
#작가의 말
한 인간의 손목을 묶는 것은 단순한 구속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숨결과 사상의 흐름을 억누르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깃든 자유의 불씨를 꺼뜨리려는 시도다. 새끼줄은 헐겁게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는 권력의 공포와 체제의 폭력이 비늘처럼 겹겹이 감겨 있다.
심문은 진실을 캐내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복종을 강요하고 의지를 꺾기 위한 고문이었다. 질문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침묵조차 죄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증언한다. 새끼줄로는 사상의 뿌리를 묶을 수 없고, 심문으로는 신념의 숨결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 억압의 밤을 통과했다. 어떤 이는 생명의 호흡이 끊겼고, 어떤 이는 부서진 채로 남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끝내 묶인 손목보다 하늘의 영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