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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 14

하늘을 흔든 날, 그날의 아이들

by 강순흠


경성에서 들려온 편지
1919년 4월 초.
소안도 민족학교 마당.
김상진이 보낸 편지가 교사 손을 거쳐 세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경성의 하늘은 아직 탁하지만, 만세의 소리는 골목마다 메아리칩니다.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외침은 평양, 대구, 전주를 넘어 진주, 제주, 완도까지 흘렀습니다.
그날, 수많은 이름이 붙잡혔지만 그 정신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두석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중얼거렸다.
“어머니들이 말한 봄이, 정말 오고 있는 걸까…”



그날 밤, 민족학교 교실 한켠에서 세 아이는 각 지역에서 벌어진 3.1 운동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있었다.
영재는 말한다.
“화성 제암리, 거기선 교회에 모인 마을 사람들을 일본군이 불태웠대.
마을 전체가 타버렸지만, 마지막까지 찬송가가 울렸다고…”
순형은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평양에선 학생들이 주도해서 선언문을 나눠줬다.
부산에선 일본 상점들이 불탔고, 제주에선 여자들이 앞장서서 행진했지.”
두석은 손에 쥔 붓을 꾹 눌렀다.
“우리도, 해야 해. 말로만 외치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려.
이름을 써야 해. 얼굴을 내야 해.”



며칠 후.
소안도 뒷산 ‘바람바위’에서,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조용히 모였다.
먼저 나선 건 순형이었다.
“우린 오늘, 이름을 숨기지 않을 겁니다.”
그가 손에 쥔 만세깃발이 밤바람에 펄럭였다.
영재가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린…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석.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스스로 쓴 선언문이었다.
“우리는 조선의 자식이다.
이름을 뺏기고, 말을 뺏기고, 어머니의 웃음을 뺏긴 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 이름으로 외칠 것이다.
조선 독립 만세!”
그 외침에, 산골짜기 아래 바다까지 울렸다.
그날 밤, 하늘엔 별 대신 횃불이 떠 있었다.



4월 말.
총독부는 '조선 민심 진정'이라는 명분으로 무단통치 방식을 수정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헌병대 대신 경찰제, 일본어만 쓰던 학교엔 조선어 시간 1회를 허용.
표면상 변화였지만, 아이들은 그 기미를 알아챘다.
“저항은 불가능을 흔드는 일이야.”
김상진이 떠나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 민족학교 안에서도 온도의 차가 생겼다.
“이제 그만 조심하자”는 아이들과
“이대로 멈추면 끝”이라 말하는 이들로 나뉘었다.
영재는 말한다.
“가만히 있어도 안 죽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어.”
순형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
그는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다른 길’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석.
“우린 아직 이름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 계속 말하고 써야 한다.”
그 밤, 세 소년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 다른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 말
3.1 운동은 단지 만세를 외친 사건이 아닙니다.
그날, 이름 없는 백성들이 처음으로 ‘내 나라’, ‘내 말’, ‘내 이름’을 되찾기 위해
하늘을 흔들고, 거리를 울렸던 날이었습니다.
소안도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 속에서도
자기만의 선언문, 자기만의 함성을 만들며
그 역사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일제의 통치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선인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날, ‘할 수 있다’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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