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32

by 강순흠



바다를 향한 언덕길은 쓸쓸한 바람에 싸여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지만, 그곳마저도 감시의 눈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여기라면 괜찮을 거야.”

군수가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스쳤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오빠, 오래 있을 순 없어요. 사람들의 눈이… 너무 무서워요.”

소희의 말처럼, 그녀가 섬에 들어온 이후 마을에는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저 우익 집안 딸이 왜 여기에?’라는 의심과 곁눈질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더욱이 지서의 단골이었던 군수와 함께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

둘은 바다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았다. 파도 소리가 귓가를 채웠지만, 그 소리마저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빠, 난… 좌익도 우익도 몰라요. 아버지가…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냥 제 아버지였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왜 사람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걸까요?”

소희의 목소리는 떨렸다. 군수는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어 모든 것이 부정당했던 그날을.

“나도… 몰라, 소희야. 그런데…”

군수가 망설이듯 말을 이었다.

“너를 보면… 그래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희는 군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희미한 빛이 스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군수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차가운 손길이었지만, 그 안에선 간절함이 느껴졌다.

“우리… 함께 살아남아요, 오빠. 아버지들이 바라보고 계실 테니까.”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순간 몸을 굳혔다. 손전등 불빛이 그들을 향해 비쳤다.

“거기 누구야?!”

지서 순찰병이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군수와 소희를 번갈아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강군수, 자네 또 무슨 꿍꿍이야? 이 아가씨는 누군가?”

군수는 소희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제 동무입니다.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사이요.”

순찰병은 냉소를 지었다.

“동무? 요즘 세상에 친구 따위가 어디 있나? 조심하게, 강군수. 자네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보인다네.”

순찰병이 떠난 후에도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군수는 소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소희야. 우리… 꼭 살아남자.”

그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차가운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혼란한 시대, 과연 그들의 작은 희망은 지켜낼 수 있을까.

#작가의 말

군수와 소희의 관계가 한층 가까워지는 동시에, 그들을 에워싼 현실의 벽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통해 위로를 얻고, 살아남겠다는 결의를 다지지만, 시대의 감시와 의심은 그들을 쉼 없이 위협합니다. 군수와 소희의 관계는 이처럼 사랑과 두려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은 희망이 이 거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라날지, 그들의 앞날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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