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33

동백꽃처럼

by 강순흠



바다를 향한 언덕길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 끝자락에는 붉은 동백꽃 몇 송이가 고군분투하며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얼어붙어도 자신만의 빛깔로 살아남겠다는 듯이.

군수는 소희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주변을 경계하는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이 추운 겨울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곁에 있어주니… 내가 아직 사람으로 살아있구나, 느껴.”

군수의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소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도 같은 감정이 스쳤다.

“오빠도 나에게… 변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에요.”

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언덕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동백나무 사이에서 가장 붉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꺾어 들었다. 그는 소희 앞으로 돌아와 그 꽃을 내밀었다.

“이거 알아? 동백은 다 떨어져도, 또다시 피어나는 꽃이야.”

그가 소희의 머리칼 사이에 꽃을 꽂아주자, 소희는 살짝 미소 지었다.

“저기… 오빠.”

“응?”

“옛날에… 광주에서 불러주던 노래, 기억나요?”

군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눈보라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 내 가슴에도 꺼지지 않는 불…”

소희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군수의 목소리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받았다.

“♩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맘… 함께라면 끝까지 가리라…”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져 차가운 공기를 데웠다. 그 순간만큼은 전쟁도, 이념도, 증오도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저 두 사람과, 그들을 감싸는 노래만이 남았다.

노래가 끝나자, 군수는 소희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우리… 꼭 다시 피워보자, 이 동백꽃처럼.”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네, 오빠. 함께요.”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소리는 이제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의 맹세를 증거 하는 축복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여전히 위험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봄이 오고 있었다.


#작가의 말

동백꽃은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군수가 소희에게 동백꽃을 꽂아주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죽음과 공포의 시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따뜻함과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 서로를 구원하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희망의 불꽃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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