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다
가을바람이 불던 그날, 금당도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바다는 멀리서부터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일몰의 색이 아니라,
불길한 기운이 번져오는 징조였다.
면사무소 마당에는 헌병과 경찰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말보다 명단이 먼저 움직였다.
지서의 순경이 종이 한 장을 높이 들었다.
“예비검속 대상자 명단이다.
이름이 불리는 사람은 순순히 나와야 한다.
저항하면 발포한다!”
사람들의 심장이 동시에 멎었다.
누구도 숨을 크게 쉬지 못했다.
“강군수!”
그 이름이 불렸다.
짧은 침묵이 마을을 덮었다.
누군가는 시선을 돌렸고, 누군가는 모른 척했다.
밤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요… 우리 아들은 아무 죄도 없어요.
그저 살려고 한 것뿐이에요!”
그러나 그 목소리는 파도에 묻혀 사라졌다.
군수는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엔 두려움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끝’을 예감한 사람의 평온함만이 서려 있었다.
지서의 창고에 모인 사람들은
금당도 곳곳에서 끌려온 이들이었다.
농부, 교사, 청년, 심지어 노인까지.
대부분은 자신이 왜 붙잡혔는지도 몰랐다.
군수가 묶인 손목으로 벽을 더듬었다.
차갑고 거친 감촉이 손바닥을 스쳤다.
그는 조용히 속으로 되뇌었다.
“아버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이 왜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하셨는지.”
그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서 있던 수리넘 언덕이 떠올랐다.
피비린내, 총성, 그날의 바람.
그리고 그 바람 끝에 들려오던 아버지의 숨소리.
새벽이 되자, 경찰들은 사람들을 묶어 포구로 끌고 갔다.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론가 향하는 작은 어선.
덜컹거리는 엔진 소리가 파도에 섞여 울렸다.
배 안은 고요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누구도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눈빛 속에서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았다.
군수는 옆자리에 앉은 노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바다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말을 기억한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바다의 말이 되겠구먼.”
목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경찰은 밧줄을 들고 다가왔다.
군수의 팔목이 묶였다.
그 밧줄 끝엔 돌덩이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그를 비추고 있었다.
“아버지, 이 바다가 우리를 삼켜도
진실은 가라앉지 않겠지요.”
그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밧줄이 팽팽히 당겨지고,
차가운 물이 발끝을 덮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소리가 멎었다.
그날 이후, 목섬 앞바다는 붉게 물들었다.
섬사람들은 그곳을 향해 감히 배를 띄우지 않았다.
밤마다 바람이 불면,
누군가의 이름이 파도에 실려 들려왔다.
“군수야… 군수야…”
밤례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끝엔 언제나 차가운 바람만이 남았다.
#작가의 말
그해 가을, 금당도의 바다는 수많은 이름을 삼켰다.
그들은 죄인이 아니었다.
그저 시대의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명단’이 되었을 뿐이었다.
군수의 마지막은 비극이지만,
그의 침묵 속엔 한 가지 진실이 남아 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