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40

바다의 말

by 강순흠


바람이 불었다.
목섬 앞바다의 물결이 잔잔히 일었다가 부서졌다.
밤례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또 다른 파도가 채웠다.

섬의 사람들은 여전히 말을 아꼈다.
누가, 왜, 언제 데려갔는지 묻는 이는 없었다.
묻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새벽, 마을 어귀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밤례! 큰일 났소!
생일도 모래사장에 시체가 하나 떠올랐다네요!”
그 말에 밤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물동이가 모래 위로 굴러 떨어졌다.
‘혹시… 군수인가.’
그녀는 말없이 바다를 달려 생일도에 도착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가슴속 파도는 거칠었다.

모래밭엔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물가에는 남루한 시신 하나가 뒤집힌 채 밀려와 있었다.
밤례는 떨리는 손으로 시신의 어깨를 붙잡고 조심스레 뒤집었다.
짙게 부은 얼굴, 바닷물에 젖은 옷,
하지만 그 얼굴은 군수가 아니었다.
순간, 안도와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군수야… 아니구나… 그럼, 우리 아들은 어디 있는 게냐…”
밤례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또 그랬구먼…”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 한마디가 섬의 비극을 대신했다.
바다는 매일 시신을 내던졌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이 그렇게 돌아왔다.

밤례는 그날 저녁까지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파도가 발목을 적셨지만
그녀는 꼿꼿이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치 기도하듯 속삭였다.
“군수야, 어디에 있더냐.
이 바다가 다 알고 있을 텐데…
어미는 아직 너를 부를 목소리가 남아 있다.”
밤이 내리자, 달빛이 목섬 위로 부서졌다.
그 빛은 마치
수면 아래 잠든 영혼들의 숨결 같았다.

아들이 사라진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밤례는 손에 작은 조가비 하나를 쥐고 있었다.
군수가 어린 시절 주워온 것이었다.
그때 군수는 바다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바다는 다 알고 있지요?
누가 울었는지, 누가 웃었는지도 다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 말이 지금도 귀에 남았다.
그래서 밤례는 매일 바다로 왔다.
아들이 사라진 그 물가에,
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군수야… 오늘도 바람이 분다.”
그녀의 목소리가 바다로 흘러갔다.

어떤 날은 파도가 대답했다.
‘응,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어떤 날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럴 땐 밤례는 모래 위에 이름을 썼다.
‘강군수.’
그리고 그 이름이 파도에 지워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가끔, 마을 사람들은 속삭였다.
“밤례가 미쳤대.”
“그럴 만두 하지. 그 아들, 그때 바다로 끌려갔다잖여.”
그 말들이 들려올 때마다 밤례는 고개를 숙였다.
미친 건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밤이 내리면
달빛이 목섬 위로 부서졌다.
그 빛은 마치
수면 아래 잠든 영혼들의 숨결 같았다.

밤례는 작은 돌 하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다.
‘툭—’ 하는 소리 뒤에 물결이 퍼졌다.
그 순간, 바다 아래서 무언가가 속삭이는 듯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바다는 차갑지만, 여긴 고요해요.”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물이 한 줄기, 주름진 뺨을 따라 흘렀다.

그날 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지붕 위의 기와가 흔들리고,
문풍지가 울었다.
밤례는 등잔불을 켰다.
그리고 군수가 남기고 간 작은 수첩을 펼쳤다.

거기엔 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아서 죽은 자가 있고

죽어서 산자가 있다.
하지만 진실은 때로는 사람을 죽인다.
그럼에도 나는,

진실을 믿는다.”

밤례는 그 글씨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글자는 이미 닳아 희미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뜻만은 여전히 뜨거웠다.

새벽이 되자, 바람이 멎었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목섬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밤례는 그 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가거라…
저 아이도 이제 하늘로 갔겠지.”

그녀는 마지막으로 바다에 인사했다.


#작가의 말
밤례의 바다는 슬픔의 장소이자 기억의 무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다시 세상과 이어지는 진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배우고, 기억하고, 살아남았다.
“망각은 평화를 주지만, 기억은 인간을 만든다.”
그녀의 바다는 더 이상 붉지 않다.
그곳엔 이제,
다시 피어난 동백꽃의 붉음만이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핀 동백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