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41

역개산의 그림자

by 강순흠



1950년 여름, 금당도에도 전쟁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기 시작했다.
서울이 무너지고, 대전 방어선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 바다 건너 들려왔다.
그러나 사람들을 더 떨게 만든 건 따끈한 전황보다, 장흥 장터에서 건너온 말이었다.
“인민군이 호남부터 장악한다 카더라. 곡창지대부터 잡아야 오래 간다나…”
동네 어귀마다 이런 소문이 들려왔고, 광주가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사람들은 얼굴빛을 잃었다.
며칠 뒤 순천 보성도 장악됐다는 말이 번졌다.

금당도 어민들은 그날도 출어에 나섰다
그물을 끌어올리던 중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경비정이 즉각 철수를 외쳤다
인민군이 장흥 근처에 와 있다는 경고와 함께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몇몇 어민들은 전재산인 어망을 버려두고 즉각적인 철수를 못했다

이에 경찰이 어민 100여 명을 금일지서에 구금하였고 이에 대해 어민 정대동이 거칠게 항의하였다.
정대동은 동네에서 말이 많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마을 잔치만 열리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부르고, 술이 돌면 그날의 세상사를 흥분해 떠들어대던 사람이었다.

어민들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어망이 곧 전재산이라는 걸 뼈저리게 이해했다.
그 자신도 가난했고 , 그의 아버지도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배 위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망을 놓고 철수하라는 경찰의 명령은 , 그에게 살림살이를 통째로 바다로 버리라는 말처럼 들렸다.

며칠 후 결정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인민군이 장흥 회진까지 들어왔다.”
그 순간, 금당도는 소란보다 침묵이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흥이 무너지면, 완도와 그 곁의 작은 섬들은 순식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완도 관내의 경찰과 군인들은 이미 퇴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투력이라 부르기 민망할 만큼 인원도 장비도 부족했다.
그들은 청산도로 집결하며 섬을 비웠다.
그러나 모든 경찰이 빠져나간 건 아니었다.
배편을 놓쳐 숨어 지내는 이도, 끝내 도망치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1950년 9월 6일 아침
인민군이 금당도로 들어왔다.
붉은 완장을 찬 젊은 병사들이 마을길을 훑으며 외쳤다.
“겁낼 거 없소! 이제 진짜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낮췄지만, 속은 불안으로 뒤틀렸다.
그 무렵, 누구보다 먼저 인민군에게 다가간 이가 있었다.
바로 정귀홍이였다.
귀홍이는 원래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1948년 단선·단정이 추진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나라를 둘로 쪼개선 안 된다”는 청년들의 주장에 마음이 움직였고, 몇 번 집회에 나갔다가 경찰의 눈에 박혔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 이유 없는 연행
– 심한 구타
– 논일하다 끌려가 밤새워 서 있기
이런 일들이었다.

귀홍이는 말하곤 했다.
“내가 무슨 빨갱이라요… 나라 둘로 나누지 말자 한 죄밖에 없는데…”
그러나 좁은 섬에서 한 번 찍힌 낙인은 끝까지 따라붙었다.
전쟁이 터지고, 금당도 경찰 대부분이 빠져나가자 귀홍이의 눈은 달라졌다.
그가 오래 품어온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이제는 나도 당하기만 하진 않겠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인민군이 들어온 첫날 밤, 귀홍이는 그들을 찾아갔다.
“저… 우리 섬에 아직 못 빠져나간 경찰 한 명 있당께요.
나… 그 사람한테 많이 당했시오.”
인민군 중대장은 귀홍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놈이란 자, 인민을 때린 놈인가?”
귀홍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람 취급도 안 했지라…”
“그럼 같이 갑시다.”
그 말에 귀홍이의 어깨가 움찔하며 들썩였다.
그건 단순한 ‘협조’가 아니라, 그간 모욕당하던 삶의 복수였고, 억울함을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숨죽이며 숨어 있던 경찰이 대문 틈에서 막 나오려 하던 순간, 귀홍이는 달려들었다.
“귀홍아! 잠깐만, 말 좀 들어봐라”
“말? 내는 네 말 들을 필요 없소! 내가 얼마나 맞았는지 알기나 혀?”
귀홍이의 주먹에는 그간 눌려 살던 한(恨)이 담겨 있었다.
인민군들은 말리지도, 부추기지도 않았다.
그저 지켜봤다.
경찰은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날 밤, 귀홍이는 혼자 마을 어귀에 서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이제는 안 맞아도 되겄지…”
하지만 전쟁은 한 사람의 응어리를 풀어주기엔 너무 잔혹했고, 세상은 너무 빠르게 뒤집혔다.

며칠 뒤,
국군이 반격에 나섰고 금당도는 다시 수복되기 시작했다.
인민군은 떠났고, 그 자리엔 돌아온 경찰들이 배치됐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민군 협조자’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귀홍이! 나와라! 인민군 앞잡이 정귀홍!”
그들은 귀홍이 집 대문을 발로 찼다.
귀홍이는 끌려가며 울부짖었다.
“앞잡이라니요! 나 억울해서… 한 번만이라도 내 말 좀 들어주소!
나, 나라 팔아먹은 적 없다니께!”
그러나 그 말을 믿어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귀홍이가 인민군에게 했던 행동은 이미 ‘증거’가 되었고, 아무도 그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려 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정대동의 집 대문도 걷어찼다.
철수명령을 어기고 경찰에 항의한 대동이를 부역혐의자로 지목했다.

며칠 뒤 새벽, 역개산 골짜기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귀홍이와 대동이의 두 다리는 힘이 빠져 질질 끌렸고, 입술은 파래져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희미한 새벽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렇게 죽을죄를 지었는가…”
"어민 편좀 들었다고 이런 벌 받아야 된당가....?"
"나, 사람 대접받고 싶었던 죄밖에 없소."
그들의 말은 총성과 함께 산 아래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날 아침, 금당도는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이 오해와 시대의 바람 속에서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았다.
전쟁은 총알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속 가장 약한 부분을 찢어놓는다는 사실을.

#작가의 말
전쟁이 가져온 폭력의 형태가 총과 포만이 아닙니다.
귀홍이는 ‘이념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걸 두려워했고,
그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경찰의 탄압을 받았던 한 청년이었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억압의 기억에 흔들렸고,
잠시나마 ‘내가 당한 만큼 되돌려줄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복수의 기회를 주는 척하며,
결국 사람을 또 다른 희생자로 삼아버립니다.
대동이는 적도, 영웅도 아닌
‘시대에 휘말린 평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묻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이 얼마나 손쉽게 무너지는지 보여줄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핀 동백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