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에 떨어진 새벽의 총성
부두 위에는 안개가 허옇게 깔려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의 청산도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 아래에는 어제 하루 종일 조여온 공포와 의심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오늘, 인민군이 다시 상륙한다는 말.
그리고 환영대회를 준비하라는 이장의 말.
그 말 한마디가, 한 마을의 숨길을 바꾸어 놓았다.
마을부두에 떨어진 새벽의 총성 사람들은 전날 늦게까지 부두를 쓸고, ‘인민군 만세’라고 적힌 빨간 천을 꺼내 먼지를 털고, 혹시라도 눈 밖에 나 처벌당할까 두려워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누구도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야 했고,
살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만 했다.
새벽녘, 아낙네들의 발길이 부두로 이어졌다.
어깨에 아이를 업은 이도 있었고, 미처 잠을 깬 지도 않은 얼굴로 남편 뒤에 선 이들도 있었다.
모두가 떨고 있었다.
“정말… 오는 것이요?”
누군가가 속삭였다.
“이장이 그리 말했잖요. 준비 안 하면… 다 죽는다고.”
바닷가에서 새파란 바람이 몰아쳤다.
그 바람이 사람들의 옷깃을 흔들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흔들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부두 끝쪽에서는 이장이 사람들을 줄 세우며 소리쳤다.
“금새 온다네요~잉, 무조건 고개 숙이고 박수 치씨요~잉! 웃어! 인민군 들어오면 환영하는 척 혀야 한당께!”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목젖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도 두려운 것이었다.
그도 살기 위해 외치는 것이었다.
멀리서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그림자 몇 척이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온다… 온다!”
순간 수십 명의 주민들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그들의 입 안이 바싹 말라붙고, 손바닥에 땀이 줄줄 흘렀다.
배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가슴은 조여들었다.
어떤 이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안았고, 어떤 이는 치마폭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배가 부두에 닿는 순간
대기 속 공기가 달라졌다.
누군가의 말할 수 없는 예감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뭔가, 이상하네.”
뒷줄의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그랬다.
내려오는 인민군 병사들 그들의 걸음, 표정, 심지어 총을 든 손마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무겁고, 너무 날카롭고, 너무 숨을 죽인 기척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알아챌 수 없었다.
알아채도 말할 수 없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위장한 경찰부대는 조용히 부두 위로 올라섰다.
붉은 완장을 찬 채, 인민군 군모를 깊게 눌러쓴 그들은 주민들이 박수치는 가운데 줄을 맞춰 섰다.
그 순간, 대열 앞에 선 이장이 울먹이며 외쳤다.
“우리 청산도 주민 일동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열 앞의 ‘병사’ 한 명이 고개를 조금만 들었다.
그의 눈빛.
붉은 완장과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굳은 눈빛.
딱, 그 순간
한 어머니가 아이를 부여잡고 직감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탕!
첫 발이 울렸다.
안개 속에서 총성이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탕, 탕탕!
연속해서 총구가 번쩍였고,
환영의 박수를 치고 있던 주민들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으아아악—!!”
“도망쳐! 도망… 으—”
부두 위에 피가 튀고, 사람들의 몸이 휘청이며 쓰러졌다.
어떤 이는 아이를 감싸 안았고, 어떤 이는 두 손을 들고 엎드렸으며,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절규했다.
그러나 총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리지 않았다.
비명을 향해, 기도를 향해, 도망치는 등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바다는 새빨간 띠를 머금고 흔들렸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할 즈음,
부두 위에는 더 이상 환영대회 준비물도, 박수도, 인민군 만세도 없었다.
남은 것은
총성과 비명과,
주민들의 억울한 죽음만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왜 죽어야 했는지 몰랐다.
그 어느 누구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다만,
‘살기 위해 했던 행동’이
그들의 마지막 행동이 되어버렸다는 사실만이
잔혹한 진실처럼 남아 있었다.
섬의 아침 하늘은 밝아오고 있었지만,
그날 청산도의 새벽은 다시는 밝아오지 않았다.
#작가의 말
전쟁은 언제나 ‘누가 옳았는가’보다
‘누가 먼저 죽는가’를 더 잔혹하게 드러낸다.
전남 남부의 섬마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이념도, 신념도, 전략도 없었다.
오직 공포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평범한 주민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어느 쪽도 아니었고,
단지 ‘살아남아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살아남고자 했던 몸짓’을
처벌해야 할 표식처럼 삼아버렸다.
이 글은 그들의 억울함과
말할 수 없었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기록이다.
누군가의 이름 없는 희생이
더 이상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