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46

명단이 내려오다

by 강순흠



인민군이 물러간 뒤, 청산도 바다는 잠시 고요해 보였다.
그러나 그 고요는 평온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침묵에 가까웠다.
새벽 물안개를 가르며 군정선 한 척이 포구로 들어왔다.
엔진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섬 전체가 그 소리를 들은 듯했다.
사람들은 문을 열지 않았다.
열어도 안쪽에서 살폈다.
배에서 먼저 내린 것은 군인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군복 위에 경찰 완장을 찬 자들이었다.
그들은 총을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보다 확신이 깔려 있었다.
“부역자 색출 작전 개시한다.”
짧은 명령이었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면사무소에 남아 있던 낡은 책상이 끌려 나왔다.
그 위에 서류철이 놓였다.
종이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명단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섬에서는 충분히 길었다.
경찰은 이장을 불렀다.
이장은 며칠 전, ‘다시 인민군이 들어온다’는 전갈을 전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의 손은 떨렸고,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름 확인해.
누가 어디 사는지.”
이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지 않으면, 다음 이름이 자기일 수 있었다.


첫 번째 집은 포구와 가장 가까운 초가였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잠글 이유도, 잠글 용기도 없었다.
“김갑동, 나와.”
대답이 없자 문이 열렸다.
안에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환영대회 날, 앞줄에 서 있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했소.
나가라 해서 나갔고, 손 흔들라 해서 흔들었을 뿐이오.”
경찰은 듣지 않았다.
대답은 이미 필요 없는 단계였다.
노인은 끌려 나왔고, 손이 묶였다.
그의 아내가 따라 나왔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말하면 일이 더 커진다는 걸, 이 섬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집도 같았다.
어떤 이는 젊었고,
어떤 이는 병이 있었고,
어떤 이는 환영대회에 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단은 말보다 강했다.


“환영대회에 나온 자 전원.
혹은 그걸 알면서도 말리지 않은 자.
혹은 인민군에게 쌀을 준 자.
혹은 준 것으로 의심되는 자.”
기준은 점점 넓어졌다.
경계는 흐려졌다.

정오 무렵, 포구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모였다고 하기보다는, 모아졌다.
아이들은 멀리서 보았고,
어른들은 땅만 보았다.
그날 총성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이건 심문이 아니라, 정리의 시작이라는 것을.
바다는 조용했다.
그러나 파도는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날 저녁, 포구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이름을 불렀고, 불린 사람은 앞으로 나왔다.
불리지 않은 사람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경찰은 종이를 접어 쥐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명단이 있었고,
명단은 더 이상 글이 아니라 사람의 무게였다.
“이쪽은 데리고 간다.”
말은 짧았다.
이유는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알았다.
'데리고 간다'는 말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섬에는 다시 깃발이 걸렸다.
이번에는 오래 걸릴 깃발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이후,
누구도 더 이상
‘끝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
부역자 색출 작전은 전투가 아니라 행정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총보다 먼저 명단이 왔고,
총성보다 먼저 서류가 움직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선택하지 않은 자들에게도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누가 옳았는지를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묻고자 합니다.
명령은 위에서 내려왔지만,
사람을 끌어낸 것은 같은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얼마나 쉽게 도구가 되는가.
전쟁은 끝나도,
그날 불린 이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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