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땅 사이에서
명단은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고발이었고,
누군가의 기억이었고,
누군가의 침묵이었다.
종이 한 장 위에 적힌 이름들은
서로를 알기도 했고,
모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들은 같은 운명을 공유했다.
“부역 혐의자.”
그 말은
설명되지 않았다.
입증도 필요 없었다.
그저 불려지면 끝이었다.
사람들은 새벽에 끌려 나왔다.
아직 바다가 잠에서 덜 깬 시간,
안개가 물과 땅의 경계를 지우고 있을 때였다.
손목이 먼저 묶였다.
너무 꽉 묶이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경찰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밧줄을 돌렸다.
묶는 사람도, 묶이는 사람도
말이 없었다.
“완도로 간다.”
그 말 한마디가
그들을 붙잡고 있었다.
완도경찰서로 간다는 소문은
섬 전체를 떠돌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조사만 받으면 돌아온대.”
또 누군가는 고개를 저었다.
“가는 길이 바다잖아…”
그러나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작은 배에 태워졌다.
어선이었고,
군용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배 바닥에는
이미 준비된 것들이 있었다.
크고, 거친 돌멩이들.
사람 하나쯤은
충분히 끌어당길 무게였다.
누군가 그걸 보았고,
누군가는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바다가 점점 깊어질수록
말이 줄었다.
물결 소리만 남았다.
경찰 한 명이
명단을 다시 펼쳤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쳐도 갈 곳이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밧줄이 발목으로 내려왔다.
손목과 발목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돌.
돌은 사람보다 말이 없었다.
차갑고, 무거웠다.
그 무게가
곧 자신들의 미래라는 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누군가는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소.”
그 말은
바다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다.
하늘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는
끝까지 눈을 떴다.
혹시라도
이 장면을 기억해 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가자.”
짧은 명령이었다.
첫 사람이
물로 밀려났다.
비명은 없었다.
소리는 물속에서
너무 빨리 사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몸이 물에 닿는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숨은
돌의 무게보다 가벼웠다.
몸은 아래로,
생각은 위로.
물속에서
시간은 이상하게 늘어났다.
어릴 적 얼굴,
집 앞 마당,
밥 냄새.
그리고
숨이 끊겼다.
배는 다시 움직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날 이후,
사람들은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
완도경찰서에 갔다는 말도 있었고,
이송 중이라는 말도 있었고,
아직 조사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소문은 하나로 모였다.
“다… 바다로 갔다더라.”
시신은 떠오르지 않았다.
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공식 기록에 남지 않았다.
사망일도,
사망 장소도.
그저
생사불명.
물과 땅 사이에서
사람은 그렇게
이름에서 먼저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 섬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다음 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기를
매일 기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다는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작가의 말
이 장면을 쓰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잔혹함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담담하게 써야 하는가였습니다.
수장은 비극적 장면이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에게
그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이었고, 절차였고,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저는 비명을 키우지 않았고,
피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록되지 않은 방식,
소문으로만 남은 죽음의 구조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재판을 받지 않았고,
유죄가 증명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명단’에 있었고,
‘이송 중’이라는 말 아래
바다로 사라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공식 역사에서는 늘 행방불명으로 남습니다.
물과 땅 사이
그 경계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법과 폭력, 생과 사, 기록과 망각의 경계였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이름을 잃고,
증언을 잃고,
마침내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집니다.
이 글은
누가 가해자였는지를 단정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묻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사라질 수 있었던 시대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침묵을 얼마나 오래 받아들여 왔는가.
이 글은
바다를 고발하지 않습니다.
바다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말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를 향해
조용히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