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없는 울음
인민군이 물러간 뒤, 섬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평온이 아니었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이 아니라 비명 없는 울음이었다.
사람들은 살아 있었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곧 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밤례의 눈가에서는 쉼 없이 뜨거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울음은 이미 몸 안에서 다 말라버린 듯했다.
그녀는 그저 앉아 있었다.
남편 두석이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수리넘의 그 자리,
아들 군수가 바다로 끌려가던 목섬 방향을 향해
하염없이 시선을 두고 있었다.
두석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던 그 자리
가까운 언덕에
두석의 차가운 몸에 흙을 덮었다.
밤례는 그 흙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울 줄 알았던 땅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 온기가 더 그녀를 무너뜨렸다.
두석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
밤례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그러나 아들 군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신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고,
밤례는 셋게 엽당에 빈무덤을 만들었다.
이름을 적은 나무판 하나,
지푸라기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수의를 입혔다.
그리고 봉분을 만들었다.
밤례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울음은 기도가 아니었고,
원망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밤례는 그 뒤로 자주 바다를 보았다.
바다를 향해 말을 걸지 않았다.
대답이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어디에 있든, 춥지는 않기를.”
그 말은 아들을 향한 말이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붙드는 주문이었다.
둘째 아들 현수는 열세 살에 아버지 두석을 잃었고,
열다섯에 형 군수를 잃었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사람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끌려가던 날,
총성이 울렸을 때
현수의 몸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도망치지도, 울지도 못했다.
다만 심장이 귀 안에서
쿵, 쿵 소리를 내며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형 군수가 끌려가던 날,
현수는 바다를 보았다.
밧줄, 돌, 사람의 몸.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물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그의 눈에 각인처럼 박혔다.
그날 이후 현수는
밤마다 같은 꿈을 꾸었다.
자신의 발목에도 밧줄이 묶이고,
누군가 “곧 풀어준다”는 말을 하며
등을 떠미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면 발목이 저려왔고,
물에 빠진 적 없는 몸이
마치 깊은 바다를 다녀온 것처럼 무거웠다.
현수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예민해졌다.
낯선 그림자만 지나가도
숨을 삼켰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심장이 먼저 도망쳤다.
‘이번엔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그의 앞에 있었다.
그는 아이였지만,
더 이상 아이일 수 없었다.
밤례는 현수의 두려움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위로할 말이 없었다.
“괜찮다”는 말은
이미 너무 많은 거짓이 되어버린 뒤였다.
그래서 밤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현수의 등을 오래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너는 꼭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었고,
버텨야 한다는 부탁이었다.
전쟁은 물러갔지만,
그날의 기억은 떠나지 않았다.
남은 자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매일을 조심스럽게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숨을 낮추고,
기억을 접고,
눈물을 삼키며.
밤례의 눈물은
그렇게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고,
죄책감이기도 했으며,
끝내 살아남은 자의 증거였다.
그리고 현수의 가슴속에서 울리던
그 두려운 심장 소리는
훗날 그가 어떤 어른이 될지를
이미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작가의 말
전쟁은 총과 포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전쟁은 남은 자들의 몸과 기억 속에서 계속됩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남겨진 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남편 두석을 총탄으로 잃고,
큰아들 군수를 바다에서 잃은 밤례의 삶은
단순한 비극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을 대신해 살아야 하는 자의 고통이었고,
말하지 못한 진실을 붙잡고 버텨야 했던 침묵의 언어였습니다.
열세 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열다섯에 형이 수장되는 장면을 본 현수의 심리는
전쟁이 한 아이에게 어떤 어른을 강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에게 공포는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고,
두려움은 기억이 아니라 몸의 반응으로 남았습니다.
이것이 전쟁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이 글에서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바다는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무덤이었고,
땅은 돌아온 시신을 겨우 받아낸 증언의 장소였습니다.
물과 땅 사이에서 사람들은
부역자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무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한 가족의 비극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밤례와 현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침묵해야 했던 사람들,
기억한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삶은 기록되지 않았고,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들이 겪은 일이
그저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끝났을지 모르나,
기억하지 않으면
그 전쟁은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용서를 강요하지도,
누군가를 쉽게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묻고자 합니다.
누가 살아남았고,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그 질문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